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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롱이 Sep 24. 2021

선생님도 선생님이 필요해

선생님도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용기

 학생 때는 수능만 끝나면 더는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대학 때는 필요한 스펙을 쌓고 나면, 임용시험을 공부할 때는 합격만 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서툴고 모르는 것이 많았고, 늘 배워야만 했다. 이제는 주식, 부동산을 비롯해 결혼, 육아 등 한 발을 내디디면 매번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걸 안다.

 선생님이 된 뒤에도 모르는 것 천지였다. 수업, 생활지도, 행정업무까지 모두 낯설기만 했다. 다 아는 척, 부족한 게 없는 척, 용감한 말과 행동을 했지만, 밑천은 금세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미 선생님이 된 나에게 가르치려 드는 사람은 없었다. 고독한 분투 속 반복되는 시행착오로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내게도 좋은 멘토가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에게도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 선생님은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은 평범하고 공부를 못한다. 심지어 일부는 부적응하거나 반항하기도 한다. 본인이 살아왔던 인생 경험만으로는 공감할 수 있는 부류의 학생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처음 교단에 서게 되면 대부분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한다. 예비 교사일 때는 모두를 용납할 수 있는 성인군자라도 된 것 같지만, 현실에 부딪히면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외국 중에는 수개월에서 일 년에 이르기까지 교육실습을 하는 곳도 있으나, 한국은 4주간의 교생이 전부다. 그 외에는 임용시험을 위해 이론 공부만을 하기에 현장과 괴리는 더 커진다. 따라서 사실상의 교육실습은 1년 차, 즉 신규일 때와 다름없다. 임용 전 안전하게 실수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한국에서는 잘 모르더라도 질문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강의를 들을 때도 교수에게 질문하면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다. 직장에서는 많이 물어보는 것보다 알아서 척척 해내는 것이 능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물며 자존심이 세고 보수적인 교사 집단은 더 심하다. 서로가 멘티가 되길 자청하고, 기꺼이 멘토가 되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도움받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교직 문화가 확산하여 함께 성장하면 좋겠다.


 얼마 전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어학원에 등록했다. 교단에는 앳돼 보이는 20대 초반의 원어민 교사가 있었다. 여기서 만약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데 저 사람에게 나더러 배우라고?"라며 불평했다면, 그건 정말 이상한 생각이었을 거다! 나는 한치의 거리낌도 없이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선생님의 입을 보며 발음을 따라 했고, 선생님이 수업을 주도하는 것에 순응했다. 모르는 것을 자주 질문했으며, 숙제를 꾸준히 해서 갔고, 유치한 상황극에서도 열연을 펼쳐 보였다. “Très Bien!(아주 잘했어!)”이라며 건네는 칭찬 한마디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누군가로부터 배움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읽으며 발견한 한 가지 공통점은, 세상에는 늘 배우려는 사람과 이미 충분히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뉜다는 것이었다. 성공한 이들은 대개 배움에 힘썼다. 그들은 많은 부와 명예를 거머쥔 뒤에도 늘 명상하고 글을 쓰며 자기를 성찰했다. 그리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스터디를 했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 나니, 잘 모르면서도 아등바등 자존심을 세웠던 과거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배우는 게 일인 선생님에게, 선생님이 필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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