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가 열이 났다. 체온계로 재어보니 38도를 넘었다. 해열제를 먹이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닦았다. 샤워를 하지 못할 것 같아 손가락과 발가락도 꼼꼼하게 닦아주었다. 은이의 손가락을 펴서 사이사이를 물수건으로 닦아주자 아이가 간지럽다며 손가락을 오므렸다. 눈을 맞추고 웃으며 아이의 손바닥을 다시 찬찬히 펼쳤다.
아이의 손바닥이 커졌다!
손바닥이 커지기만 한 게 아니었다.
손바닥의 넓이도 커졌을뿐더러 손바닥의 피부도 약간 단단해졌다.
손가락의 마디도 더 길어졌다.
분명 은이의 손가락은 이렇지가 않았는데.
조금 더 작고
조금 더 말랑하고
조금 더 짧았는데...!!
"언제 이렇게 손이 커졌지?"
나의 말에 곁에 있던 쌍둥이 자매 연이가 물었다.
"엄마, 내 손은?"
어디 보자~하고 연이의 손을 맞잡고 손바닥을 펼치는데,
연이의 손도 커졌다.
손바닥이 넓어지고, 손가락이 길어지고, 손바닥 피부가 단단해지고, 손톱까지 조금 더 단단해졌다.
"손도 예쁘게 자랐네-."
나의 말에 연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열이 나는 은이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해열제를 먹었으니 얼른 낫겠지-.
물수건을 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조리대에 물수건을 턱 걸쳐놓고 괜히 수돗물을 틀었다. 마침 옆에 놓여있던 물컵을 가져와 수세미로 씻어 헹궜다.
지난 몇 달간 일곱 살(만 여섯 살) 두 딸이 해낸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구름사다리 건너기.
두 발 자전거 타기.
피아노 치기.
종이 접어 책 만들기.
빨래 개어 제자리에 넣기.
청소기 밀기.
...
작은 두 손으로 이것저것 열심히 해 내더니 그 두 손이 어느새 쑥 자랐다.
일을 해서 손이 자란 건지, 손이 자라서 일을 해낸 건지는 알 수 없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의 단계가 유아 수준을 벗어나기 시작했고, 아이의 손이 아가의 손이 아닌 어린이의 손이 되었다가 확실했다.
마리아 몬테소리, 프뢰벨 등 유럽의 교육실천가들은 유아동의 조작활동을 중요하게 바라보았다.
그래서 아이의 신체 크기에 맞는 일상 교구를 사용하는 것이 놀이활동 중의 하나다.
아주 어릴 때는 교구들이 필요했는데 이제 조금 자라 고나니 생활용품이 모두 교구다.
일상이 하나의 교육이 되었다.
빨래도 개고, 책상 정리도 하고, 청소기도 밀고, 설거지도 도우며 아이들은 손을 키웠다.
구름사다리도 건너고, 자전거 핸들을 꽉 잡고, 피아노를 치며 아이들은 손바닥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종이를 접고, 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아이들은 손가락을 길렀다.
요즘 독립하려는 사춘기 아이처럼 혼자 하겠다는 것도 많아지고, 엄마는 자기 맘을 모른다며 토라지기도 하더니 진짜 독립하려고 아이가 그런가 보다.
커진 손을 보니 알겠다.
아이의 몸도 마음도 쑥 자랐다는 걸.
엄마인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는 더 많이 자랐다는 걸.
아이의 손바닥이 여물었다.
일곱 살의 가을,
아이의 손바닥이 단단하게 여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