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의 방학을 여유롭게 즐긴 아이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박물관 관람 정도의 가벼운 나들이와 여유로운 집콕 생활을 누린 덕분일까? 아이들이 여유로운 오전 시간과 할 일 없는 느슨한 오후의 맛을 다시 알아버렸다. 그 여파로 '어린이집 안 갈래 송'을 부르는 아이들.
고민했다.
"일을 나가는 것도 아니고, 약속이 잡힌 것도 아닌데 그냥 애들이랑 집에 있을까?"
애들이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도 꼭 가야만 하는 명분이 없었다. 어차피 나는 집에 있을 테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4시간을 보내고 나면 애들은 돌아올 텐데. 하루 네 시간 등원을 하루쯤 빼먹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다시 생각했다.
아이들이 24시간 동안 집에 머물렀던, 방학 일주일 동안 나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돌이켜보았다. 아이들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기는 무너진 지 오래고, 글쓰기, 필사, 신문 읽기, 책 읽기 등 하루를 지탱해주던 나만의 의식들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처럼, 하루 동안 쌓인 마음의 찌꺼기들을 차분히 흘려보낼 시간이 없었다. 방학을 시작하고,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딱 좋았다. 그 이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7일의 시간 동안 내 속에 쌓여만가는 응어리들을 어찌하지 못해 부들부들 떨며 보냈다.
결론을 내렸다.
"연이랑 은이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 선생님들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엄마도 할 일들이 있어. 우리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1시에 다시 만나자. 오늘 어린이집 마치고, 엄마랑 로봇팔 쇼 보러 갈까?"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아이들. 편안한 집에서 뒹굴거리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어린이집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물론, "안 갈래. -> 가야 돼. -> 네."의 삼단 공식처럼 진행된 것은 아니다. 가기 싫다는 징징거림과 오징어가 되어 흐물거리는 미적거림은 함께였다.
일어나서 준비하여 집을 나서는 게 귀찮은 아이.
어른인 나도 그럴 때가 있지 않나. 더 누워있고 싶고, 옷을 갈아입는 것도 귀찮은 순간. 나가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집에서 놀멍 쉬멍 보내고 싶은 하루. 아이의 마음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 마음을 여과 없이 받아 흘려보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만나 즐겁게 놀아보자는 약속과 함께.
"아이고, 우리 연이가 그랬구나. 그래, 엄마도 그게 귀찮을 때가 있어."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이불 위에 누워 꿈틀거리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꼬물락거리는 발가락도 만져주며 종아리를 조물조물 마사지해주었다.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뽀뽀도 퍼부으며 아이의 옷을 슬금슬금 갈아입혔다. 몸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아이.
"엄마, 오늘 로봇팔 쇼 보러 가는 거지?"
"응, 가자. 어린이집 마치고 엄마 차 타고 놀러 가자. 자, 세수하자~."
침대에서 내려온 아이를 세면대로 소몰이하듯 몰았다. 얼떨결에 따라온 아이는 양치와 세수를 말끔히 끝내고, 등원 준비를 마쳤다.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향해 걸었다.
"엄마, 근데 어린이집에서 반찬 먹기 싫어."
"아구, 그게 불편했구나."
"또, 어린이집에서 정리하기도 싫어. 난 정리가 싫단 말이야."
"아, 정리하기 싫었구나. 놀잇감으로 더 놀고 싶었어?"
일주일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시작하는 어린이집 생활. 지킬 것과 해야 할 것들이 존재하는 단체생활의 어려움을 아이는 툭툭 털어내며 씩씩하게 걸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 남아있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흘려보내 주는 것. 판단 없이, 비난 없이 '너의 감정이 이러했다'로 비춰주는 것. 아이는 이미 알고 있다. 오늘은 어린이집을 가는 날이고, 어린이집에서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를 나무라거나 조언을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안다. 몰라서 화가 나고, 몰라서 억울한 것이 아니다. 그래야 하는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이는 안다. 몰라서 가기 싫고, 몰라서 하기 싫은 것이 아니다. 그래야 하는 걸 알고 있지만 마음은 그러기 싫은 것뿐이다.
그런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도 공감이다.
'너의 마음이 이렇구나.'라고 읽어주는 말 한마디,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랬어.'라는 판단 없는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 공감의 한 마디에 뭉친 마음들이 풀어지고, 강물처럼 흘러간다. 잔잔해진 마음으로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