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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는살림중 Dec 20. 2021

육아휴직 5개월 차 외벌이 가장의 하루

인생의 방향 정하기

육아휴직을 한지 벌써 5개월 차다. 회사에 다닐 때는 하루하루가 1년 같던 시간이, 쉴 때는 폭주기관차처럼 순식간에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장난감들을 정리하며 한숨소리가 푹 쉬어진다. 마음을 다잡고 여기저기 이곳저곳 숨어있는 장난감들을 깨끗이 치워주고, 아침에 아이들이 먹고 간 우유와 그릇도 정리해 주니 무언가 해낸 기분이다.


(참고 - 아빠는살림중 유튜브 1화)


4인 가족 외벌이 가장인 내가 육아휴직을 하게 된 이유는, 7~8년 동안 영업일을 해오면서 힘들었던 부분들이 결국 풍선처럼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는 게 미덕인 줄 알았던 나는 고객들에게, 그리고 직장 상사에게 그리고 회사에 충성을 다하며 살았다. 그에 따른 급여는 높아져갔지만 그와 반대로 내 건강과 우리 가족들의 행복은 점점 내려가기만 했다. 3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벌써 고지혈증과 지방간 진단을 받았고, 아내는 아내대로 나의 스트레스를 받아주며 마음에 상처를 받았고, 우리 아이들은 정답만 얘기하는 강압적인 아빠에게 서먹해지고 말았다. 다시 돌이켜봐도 육아휴직은 하늘이 주신 기회라 생각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이 시기에 내 건강도 회복하고, 아내와의 관계 우리 아이들과의 관계도 개선하려고 한다. 그 시작은 집안일이다.


아침 정리를 한 후에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나에게 있어서 최고다. 모닝커피와 빵집에서 사 온 샌드위치로 아내와 함께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여유를 만끽한다. 샌드위치도 양상추가 신선하고 새우버거의 식감이 정말 좋다.


오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켓몬 인형을 사기 위해 인형 도매 가게에 간다. 어렸을 때 나는 포켓몬 게임을 정말 좋아했었고, 컴퓨터 게임이 나오고 포켓몬 게임을 버전별로 했던 기억이 있다. 레드 버전 그린 버전, 골드 실버 버전 다 거치면서 학교에서 재밌게 친구들과 어떻게 깼는지 물어보기도 했던 추억이 생각난다. 우리 아이들은 닌텐도 스위치로 포켓몬 게임을 하면서 알게 됐다. 20년은 지난 것 같은데 지금도 아이들의 최애는 포켓몬이라니 새삼 대단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켓몬 인형도 사고, 곰돌이 인형들 사이에서 폭신폭신하다며 좋아한다. 아이들이 기분 좋아 보여 나도 행복하다.


오늘 저녁은 무가 들어간 콩나물국을 만든다. 육아 휴직하고 5개월 만에 처음으로 만들어보는 요리다. 그전에는 아내가 다 도맡아서 요리를 해왔고, 칼을 잡는 것도 익숙하지 않지만 유튜브에 있는 레시피들을 여러 가지 검색해 보면서 만들어본다. 처음 해보는 요리지만 나름대로 재료는 다 준비한 내가 대견하다. 남은 무는 보관 했다가 나중에 다시 사용할 계획이다.


예전에는 4인 가족 외벌이 가장인 내가 우리 집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을 못하면 돈을 벌 사람이 없고, 내가 일을 해야 우리 집이 돌아가고 내가 실적을 못 내거나 급여가 줄어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를 다그치기만 했다. 아무런 목돈 없이 결혼을 했기에 그만큼 절박했다. 준비 없이 아이들을 낳고 책임져야 했기에 그만큼 내 하루하루는 치열했다. 당장 오늘 고객과의 계약이 중요했고, 남들보다 나은 실적이 중요했고 그렇게 잘 마무리하고 집에 와서는 탈진해서 잠만 잤다. 내 신체가 서서히 망가져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그렇게 일만 했다. 내 주변 동료들도 다들 이렇게 일을 했기에 나는 원래 다 그런 거라고 당연한 줄 알았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기까진 힘들었지만 하고 나서 4개월이 지난 지금은 너무나 마음이 편안하다. 이제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기로 결심했다. 높은 기준으로 나 자신을 다그치던 나를 내려놓고, "안될 거야" "넌 안 돼" 같은 부정적인 얘기보다는 "잘될 거야" "넌 잘하고 있어" "넌 이미 훌륭해"라는 긍정적인 얘기를 하면서 살고 싶다. 이제는 모든 부담들을 내려놓고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남을 위해 배려하면서 살고 싶다


콩나물국에 어울리는 두부 부침도 만든다. 간장과 식초 쪽파로 양념장을 만들고, 참깨와 참기름으로 마무리를 한다. 처음 부치는 두부인데 노릇노릇하게 구워져서 기분이 좋다. 왠지 맛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못해봤던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식사다. 아빠가 처음 차린 요리라서 서툴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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