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받았다. 치과 의자에 누워 얼굴을 덮은 채 입만 내놓고 있자니 어색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지켜 줄 안전한 공간이라 생각했던 마스크 안쪽에서, 치아세균도 보호를 받으며 왕성하게 번식하고 있었다. 입만 떼어서 치료실로 들여보내고 나는 밖에서 기다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치과는 모든 치료 과정을, 특히 소리를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점이 괴롭다.
예전에 스케일링을 받았을 때 피가 나고 아팠던 경험이 있어서 시작하기도 전에 잔뜩 긴장했다. “안 아프게 해 주세요.”소리가 절로 나왔다. 오랜만에 받은 스케일링은 오래 걸렸다. 전동기가 달린 치간칫솔로 이 하나하나를 구석구석 닦아 주는 느낌이었다. “감사해요. 하나도 안 아팠어요. 그런데 꼼꼼하게 하시느라 하루에 많이는 못 하시겠어요.”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치위생사님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니 일이 몰릴 땐 하루에도 네 다섯 건씩 거뜬히 하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재미있어요, 이 일.”
이 말을 듣고 이 분이 여기에서 오래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한테 자신의 이를 맡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은 귀하다.
호주에서 결혼해서 사는 동생이 오래전 한국에 잠깐 나왔을 때였다. 동생은 아침마다 잠에서 덜 깬 얼굴로 조카 먹일 달걀프라이를 했고 나는 그 옆에서 딸아이 밥 숟가락에 얹을 김치를 찢었다. "네가 호주에서 알(한국말이 서툰 조카는 달걀을 '알'이라고 불렀다) 부치는 여자라면, 나는 한국에서 김치 찢는 여자야." 동생은 내가 하는 말에 희미하게 웃으며 끄덕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육아로 힘들었을 때 나는 그때 했던 말을 종종 생각했다. 동생과 나의 반복되는 일상을 말한 것뿐인데 이상하게 그 말을 생각하면 힘이 났다. 우리를 객관화시킨 말이 탄생했던 순간, 하찮아 보였던 일이 더 이상 작아 보이지 않았다.
일의 의미를 찾고 재미를 느끼는 사람의 위대함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봉부아'님의 블로그 글을 애독하고 있는 팬인데, 일상에서 찾은 글감으로 쉽게 읽히는 글을 쓰시는 분이다. 며칠 전엔 일하고 계신 편의점에서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를 소분하여 포장하신 글을 쓰셨다. 단순 작업을 하느라 목이며 허리가 아팠지만 이왕이면 단정하게 포장하면서 이것을 사가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읽고 계셨다. 그날은 내가 치과에 다녀온 날이어서 글에 쓰신 '재미있다'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https://m.blog.naver.com/htera2001/222655269800
아, 나도 “재미있어요, 학교 일.” 자신 있게 말하고 싶은데 오미크론이 창궐하는 시기에 3월의 학교는 어떤 모습이 될지, 새로 만나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 일지, 지금은 불안감이 크다. 사실 실체 없는 두려움은 아이들이 더 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에게 학교 일이 재미있느냐고 물어오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내 얼굴에 책임과 고단함이 대문짝만 하게 씌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들이 나를 보면서 교사라는 직업을 매력 있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내가 하는 일이 아이들의 눈에 재미있게 보일까. 아니면 교사는 정말 힘든 직업이구나 생각할까. 그것도 아니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참을 인을 새기고 달관한 모습일까. '머리 좋은 놈은 재미있는 놈 못 따라간다'라고 했다. 나는 전자는 아니니 필사적으로 후자에 들고 싶은데 '필사적으로'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재미와 멀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필사적으로'도 빼고 힘도 빼고 그 경지에 오르기를 바란다. 어쩌면 그것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1cm쯤 옮기면 쉽게 닿을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