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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Jul 07. 2022

실패 변주곡-6

만남, 그리고 다시 나아가기 위한 위로

"잘못했네"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남자의 말은 부풀고 부풀었던 나의 죄책감을 자극해 다시금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었다. 

"칭찬 좀 해 주지 그랬어."

 예상하지 못한 말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한 아이가 있었어. 그리고 그 아이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어. 아이는 칭찬을 받고 싶어서 할 일을 열심히 다 해냈어. 그런데 어른이 와서 '아직 부족하니 더 열심히 할 필요가 있어'라고 말하는 거지. 아이는 실망하고 슬퍼. 나름 열심히 했는데 말이야. 다음 날 또 할 일이 있어. 그런데 영 재미가 없어. 그래서 다 못 끝냈어. 그랬더니 어른이 와서 화를 내는 거지. '잘한다, 이렇게 해서 언제 다 할래? 한심한 녀석. 남은 건 내일 다 해놔.' 

 이제 아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어. 용기를 잃었지. 그리고 아이는 자기가 자꾸만 싫어져. 자기가 진짜로 못났고 못 해내는 아이처럼 믿게 되지. 그럼 어른이 또 말해.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정말 약해 빠졌다.'

누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


 나는 어떤 어른이었을까. 나를 돌보고 살필 줄 아는 어른이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무언가를 잘하려면 항상 나를 쥐어짜고 채찍질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나를 존중하지 못하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몰랐다. 

난 단지 칭찬받고 싶었던, 조금 모자라더라도 나름 항상 열심히인 작은 아이의 목소리를 들어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 아이가 바라는 건 수고했다는 한마디였을 뿐인데도.

주눅 들어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던 아이가 울고 있었다. 

"저는 앞으로 나아갈 때 칭찬은 필요 없는 줄 알았어요.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것만 필요한 줄 알았는데... 예쁜 구석이 어디 있다고 칭찬을 해요."

한 번도 돌아보지도 생각해 보지도 않은 내 마음 한켠.


"극복하고 싶다고 했지."

극복하고 싶었다. 결국 나를 이기지 못한 나 자신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치유의 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같은 도전을 시도했다가 또다시 실패한다면, 무서웠다. 똑같은 절망감이 몇 배는 더 무겁게 날 내리누르겠지. 못할 거야. 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힘이 없다고 했지. "

힘이 없었다. 모든 것이 두려웠다. 

"힘이 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책만 들어온 아이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까? "


 내 안의 아이가 못한다고 소리치고 있다. 

자신을 계속 탓하면서 채찍질하는 것이 나 자신을 앞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심한 질책은 온 세상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작은 아이에게 쏟아부었다. 한 번도 돌보지 않았어. 못났으니 그런 온갖 욕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했어. 미안해...

"수고했다고 말해줘. 네가 스스로에게 용기를 줘. 칭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서 칭찬해줘. 이제 좀 돌아봐줘. "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눈물이 흘러 툭,툭 시멘트 계단 바닥에 짙은 자국을 낸다. 

 태양이 마지막 햇살을 뿜어내고 모든 것이 황혼으로 빛나다 다시 어둠으로 잠길 때까지 나는 그 모든 풍경을 바라보며 고요히 내 마음을 살폈다. 

그 남자도 해가 질 때까지 말없이 내 옆에 있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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