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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Jul 27. 2022

8. 나(성추행 피해자)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있을까 없을까

 성추행 이후 사람들의 심리적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자신의 성을 모조리 폐쇄하거나 자신을 내던지거나. 나는 후자였다. 남자들과 가벼운 섹스를 하고 나면 기분이 더러웠다. 폭력 피해자의 심리 속에는 가해자가 자신에게 한 것과 똑같은 행위를 스스로에게 반복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그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면 감당할 수 없으므로 비슷한 상황에서 가해자의 포지션을 취해 버리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방치하고 또다시 그때처럼 스스로를 학대했다. 남성을 통제하고 상처 주는 것을 즐겼다. 내 번호를 물어본 남자와 자고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다. 다시 만나자고 애원하는 전 남자친구를 만나 섹스를 하고 연락을 끊었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쾌감이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일종의 복수였다. 




 나는 성적으로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다. 엄마와 아빠는 둘 다 서로에게 첫 경험이었다. (시발 내가 이걸 왜 알아야 돼) 엄마는 생리를 ‘굳이 다른 사람들이 알 필요 없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이었고 조금이라도 성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불편해했다. 아빠는 불쾌한 성적 농담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치파오의 매력은 트인 치맛자락 사이로 슬쩍 드러나는 여자의 다리라고 했다. 엄마와의 첫 잠자리에 대해서 나에게 이야기했다. 대학교에 다니는 여자는 너무 따져서 재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화장하는 모습을 보고 술집 여자 같다고 했다. 상담 선생님께서 아빠가 정상이 아니라고 했을 땐 속이 시원했다. 그래 우리 아빠는 정상이 아니지. 


 상담 선생님이 나를 처음 보았을 때 레즈비언인지 알았다고 한다. 내가 주는 분위기가 그랬다고 하는데, 지금에서야 그 이유를 알겠다고 하셨다. 내 주변에는 존경할 만한 남성 모델이 없었고 성추행 경험으로 인해 마음 깊은 곳에서 남성을 미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나는 동성애자는 아니다. 그럼 어떤 남자를 좋아하느냐고 한다면 글쎄, 로맨스를 꿈꾼 적이 별로 없다. 




 이런 내가 망가져 있다고 느낀다. 정말 어쩔 줄을 모르겠다. 결국 언젠가는 이러다 자살하고 말 것이다. 이런 생각 자체도 생을 내던지는 것이다. 상처받고 힘들 것을 대비해서 미리 나를 죽여버리는 것이다.      

 세상의 선하고 깨끗한 것들을 미워한다. 나는 교육대학교에 재학 중인데 이곳 학생들은 웬만하면 학창 시절에 모범생들이었고 바르고 답답한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내 주변의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정말 짜증이 난다. 다 엿 먹으라고. 내가 그곳에 속해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약간은 어둡고 비틀어진 시각들에서 편안함을 찾는다. 선을 넘는 농담들을 좋아한다. 내 존재를 인정받는 것 같이 편안하다.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힘들다.

썅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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