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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Apr 02. 2024

수확 없는 꽃을 심는다는 건

읽으면서 힐링되는 <시골 포레스트>

아빠는 언젠가부터 집 마당에 꽃을 심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아침부터 모종을 사고, 씨앗을 사다가 거의 하루 종일 심었는데 엄마는 그때마다 한 마디씩 보탰다.


"아니 꽃 못 봐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그만큼 열심으로 아빠는 마당 앞쪽, 집 뒤쪽, 옆쪽까지 흙이 있는 곳에는 모조리 꽃을 었다.


그동안 우리 집 마당과 텃밭에 주로 심긴 식물은 '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작물'이었다. 오이, 고추, 토마토, 상추 등 무엇이라도 살림에 보탬이 되는 먹거리 종류 말이다.


그런 땅에 아빠가 꽃을 심기 시작한 건 아마도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필요해서이지 아닐까 싶다.


우리 집은 내가 자라는 내내 그리 여유롭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지금 딱히 크게 좋아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아빠가 꽃을 심는 건 더 늦기 전에 잊고 살았던 마음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아닐까?


꽃은 아무 때나 예뻐 보이지 않는다. 꽃은 마음에 꽃이 예쁘다는 걸 느낄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만 곁은 내준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땟거리가 걱정인 사람에게는 꽃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게다가 그 꽃이 단순히 선물 받는 꽃다발도 아니고 씨앗을 구하고, 땅을 고르고, 심고, 물을 주고, 혹시라도 잡초 정리 때 함께 뽑힐까 봐 따로 표식을 해두고, 꽃을 피우기까지 수백 번 들여다보며 기다려야 하는 일에는 그만한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여기저기 아빠의 손길이 닿은 곳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가족 단톡방엔 아빠의 꽃밭 자랑이 시작되었다. 별다른 메시지는 없다. 그저 공들여 찍은 꽃밭 사진을 툭툭 보내온다.


잘 가꿔진 화단에 있는 꽃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어딘가 투박하고 뭔가 시골스럽다.


그래도. 그럼에도.

아빠의 마음에 꽃을 심고, 보고, 도시에 나가있는 자식들에게 꽃 사진을 보내올 수 있는 마음이 생겨서 감사하다.


아빠는 집을 꽃동산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아빠가 꽃을 심어서 좋다.






p.s. 누군가의 마음에도 꽃을 보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아빠가 보내온 꽃 사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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