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늦은 아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민관 Feb 28. 2021

겨울이 가기 전에: 외할머니, 팥, 그리고 파스타

사연 있는 파스타 4. 팥 크림 파스타

사연 있는 파스타 4. 팥 크림 파스타


매년 2월의 끝자락이면 점차 따스해지는 날씨에 새삼 겨울이 끝나가는 느낌에 시원섭섭해지곤 합니다.

그런 날이면 문득 이 차가운 계절을 보내기 전, 겨울 속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음식을 괜히 다시 찾게 됩니다.


저에게 있어 그런 음식은 어릴 적 외할머니께서 끓여주신 팥죽이었습니다. 유년시절을 외가댁에서 보냈던 탓에 자연스럽게 외할머니께서 해주신 집밥을 먹고 자랐습니다.


제 입맛과 외할머니께서 차려주신 음식이 그리 썩 잘 맞진 않았지만 겨울철이면 해주시던 별미인 팥 죽 하나만큼은 지금도 간혹 생각나곤 합니다. 추운 겨울, 따뜻한 거실에서 입김을 후후 불며 먹던 구수한 한 그릇은 외할머니의 정만큼이나 포만감이 넘쳤습니다.


그런 이유로 겨울이 지나기 전, 그때 그 정감을 제 입맛의 파스타 한 그릇에 꾸덕하게 담아보려 합니다.


      



재료

마늘 12쪽, 양파 1/2개, 호두 4조각, 호박씨 한 줌, 새송이 버섯 한 줌, 돼지고기 앞다리살 200g, 불린 팥 2컵, 코코넛 밀크 200ml, 생크림 200ml, 콘킬리에 1인분

팥죽 하면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꾸덕한 식감이었습니다. 그 느낌을 파스타에도 녹여보려면 역시 크림 종류의 파스타가 답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코코넛 밀크를 좋아해서도 있지만 팥에서 느껴지는 쓴맛을 중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소한 씹을 거리를 더해보려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팥 죽 위에 동동 떠있는 새알의 식감을 주기 위해 아기자기한 콘킬리에면과 하얀 새송이 버섯을 넣어 보았습니다.


마지막 토핑까지 우리가 아는 팥죽과 비슷한 모습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호두와 호박씨를 올려보았습니다.




4컷 레시피


1. 마늘 여섯 쪽은 돼지고기 앞다리살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다져주고, 6쪽은 식감을 살리기 위해 편 썰기 합니다. 양파는 잘게 썰고 새송이 버섯은 삶습니다.

 

2. 반나절 동안 불린 팥은 쉽게 으깰 수 있도록 20여 분간 삶은 후 코코넛 밀크 200ml, 생크림 200ml와 함께 블렌더에 갈아 팥 크림소스를 만듭니다. 동시에 잘게 썬 버터를 두른 팬 위에 양파를 캐러멜 라이징 합니다.


3. 양파가 적당히 노릇하게 캐러멜 라이징 되면 마늘과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함께 볶습니다. 앞다리살은

조리 전 미리 소금, 후추, 올리브 오일로 밑간을 하여 숙성시키면 더욱 풍부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채소와 고기가 적당히 볶아질 때쯤 콘킬리에 면을 8분 정도 삶습니다.


4. 볶은 채소와 고기에 팥 크림소스를 넣고 중불에 끓여줍니다. 이때, 너무 수분기가 없어지지 않도록 파스타 면수를 적당히 첨가합니다. 이후, 익은 콘킬리에 면을 넣고 면에 소스가 베일 정도로 끓입니다. 플레이팅 시 하얀 색감을 유지하기 위해 삶은 새송이 버섯을 올리고 중앙에 호두와 호박씨를 올려 마무리합니다.




이번 한 끼를 준비하면서 어떤 음료를 곁들여 볼까 고민하다 외할머니께서 팥죽과 함께 자주 끓여 주시던 호박죽이 생각났습니다. 왠지 차게 식어도 오히려 더 달달해져 맛있게 먹던 그 맛이 기억나 단호박으로 스무디를 만들어 함께 올려봤습니다. 호박죽을 끓여주실 무렵이면 외가댁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호박이 담긴 듯한 저 패키지 때문에 평소 잘 먹지도 않던 호박씨를 선뜻 사게 되었습니다.


양이 얼마 되지도 않는 거 같은데도 굉장히 포만감이 느껴지는 한 끼였습니다. 팥의 푸근한 맛 때문인지 외할머니의 넉넉한 인심이 떠올랐습니다. 유난히 또래 친구들에 비해 말랐던 터라 항상 제가 음식을 절반 가량 비워갈 쯤이면 잘 먹어야 한다고 한 그릇 더하라고 하시던 당신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왜 그 한 그릇 더가 버겁게 느껴졌는지 지금에서야 아쉽기만 합니다. 이제는 그때보다 체격도 커지고 제법 대식가가 되어 두 그릇도 더 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외할머니께서 해주셨던 모든 음식들을 떠올려 보면 손맛이 아주 탁월하다고 말씀드리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도 저에게 있어 겨울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아직도 외할머니의 팥죽과 호박죽 만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국자로 투박하게 한 그릇 든든하게 담아 주시던 넉넉한 마음의 온기가 추운 겨울이면 더 따뜻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근 몇 년간 그 음식들은 물론 소식도 뜸해지고 자주 찾아뵙지 못했지만 차가운 이 계절 중엔 항상 당신의 한 그릇이 생각납니다.


오늘도 당신만의 손맛을 따라가긴 어려웠지만 유년시절 감사했던 그 겨울의 기억을 따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가기 전 따뜻한 마음을 전해보고 싶은 누군간가가 있다면 한 그릇을 올려보길 권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foodie_pany/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입맛이 나에게: 할머니, 흑임자, 그리고 파스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