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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야감 Jun 21. 2024

당신의 그림자를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30문장

해가 뜨거운 나날입니다. 6월에 36도를 기록하다니요. 2018년도의 끔찍한 폭염이 머리에 스치는군요. 그리고 동시에 자동차 블랙박스가 걱정입니다. 이 정도날씨라면 블랙박스 메모리칩이 녹아내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말이죠. 윈드실드에 무엇을 씌워두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네요.


그러다 보니 낮에 산책하는 횟수가 줄었습니다. 밥을 먹고 학교 주변을 휘휘 걸으며 소화도 시키고 동료 선생님들과 수다도 떨며 보내는 낭만이 있는 것인데, 이때 땀을 주룩주룩 흘려버리면 그 이득만치도 못하는 거죠. 그러는 중 따스한 햇빛에 비춘 나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검은 그림자. 머리카락에도 감각이 없지만은 두피에 신경을 집중하면 머리카락이 달려있다는 감각은 미세하게나마 느낄 수 있죠. 하지만 그림자는 그런 느낌이 없습니다. 달려있다는 느낌. 당연하죠. 사물과 빛에 의해 생기는 현상일 뿐 달려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면 내가 이 그림자가 없다면 어떨까요?


누군가가 다가와 말합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파십시오. 적절한 가격이라고 생각된다면 얼마든지 지불하겠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그림자가 없는 인생에는 어떤 불이익이 있지? 내가 내 그림자로 차양을 하지도 못할 노릇이고, 딱히 크지도 않은 몸으로 누구의 빛을 대신 가려줄 일도 없을 터인데, 팔아도 상관없지 않을까? 내가 그림자가 없다는 것을 누가, 얼마나 알아차릴 수 있을까? 알아차린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상한 사람이라고?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고?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별 문제없으려나?


별 문제없다고 치고.. 그럼 얼마가 적당할까? 일단 500만 원.. 뭔가 아쉬운데, 500만 원 받고 그림자 없는 인간이 되느니 달고 사는 게 낫겠지? 그럼 2000만 원? 그 정도면 평생 그림자가 없어도 되려나? 아, 잠깐만 평생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라.. 2000만 원..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며 사람들은 그림자를 회수당합니다. 그 그림자는 또 다른 인격이 있는 캐릭터로 인물들의 또 다른 자아를 상징하는듯하죠. 그 장면을 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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