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육신과 영혼의 이분법적 논리에 익숙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그리 느낀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어디선가 본 실험에서 개의 장기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여 가동하였더니 눈이 떠졌다는 사례, 로봇으로 예쁜꼬마선충을 재연했다는 사례를 보면 영혼은 육체 알고리즘의 결과값인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거기에 영혼의 성질을 더 세부적으로 나눠보기도 하는데요, 가령 영혼이라는 본질은 어떤 것에도 영향받지 않는 깨끗한 무엇인가라고 해봅시다. 그리고 이를 육체에 이식한 후 육체는 가동을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주변환경과 경험의 영향을 받아가며 영혼-육체 합일체는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해 갑니다.
거기에 더하여 우리 육체는 과학이 밝혔듯 호르몬의 분비로 각종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남성호르몬, 여성호르몬의 영향으로 각 성별에 따른 대표적인 심리적, 육체적 행동을 하게 되죠.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최초의 그 영혼이라는 그것을 누군가의 가장 본질적인 정체성으로 보아야 합니까, 아니면 각종 경험과 생리적 작용이 버무려진 그 결과값을 정체성으로 보아야 합니까?
살아오며 남자와 여자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각종 담론과 경험 속에 그 둘은 다른 존재다라고 여겨지지만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영혼만을 걷어올리면 결국 우리는 하나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호르몬의 영향 아래 결국 성별이라는 표상으로 나타나고 있더라도 그 본질은 영혼으로서 동일한 존재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수십 년간 친했던 남자인 친구의 가장 순수한 본질의 영혼이 여자의 육체로 옮겨간다면, 그 사람을 나는 어찌 보게 될까요? 각종 영화나 소설의 그저 남자가 여자로 바뀌었어! 후에 나오는 클리쉐적인 설정들은 생각하지 말고요.
그가 매력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다면 높은 확률로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고, 그럼에도 내 친구였던 사실을 여전히 인지하고 있기에 무언가 위화감이 감돌겠죠. 남자든 여자든 바닥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생각을 덧붙이자면 그 위화감을 느낄 이유도 없다는 기분도 동시에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 후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남자였다는 사실은 잊게 될 것 같습니다.
결국 남자든 여자든 인간이라는 존재, 아니 인간으로 국한할 것도 없이 더 보편적으로 존재 그 자체의 영혼은 하나로서 동일하기 때문이죠. 물은 동일하지만 어느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보이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이래서 많은 철학가들이 사물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물을 자주 예시로 드는가 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유를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삶은 관성으로 움직이는 데 한계가 명확합니다. 내가 왜 아침에 눈을 뜨는지, 왜 한걸음 내딛는지, 왜 이런 말을 하고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계속 내 안에서 납득돼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본질은 같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이 결국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임을, 그것이 모두가 행복하고 살아가는 이유가 됨이라고,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