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바디에서 노바디로

인정의 욕구

by 새하루


인정의 욕구.


낯선 땅에 사는 존재로부터 찬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고향 이타케에서는 왕이었고, 트로이에선 영웅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언제나 섬바디였다.

그런데 이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바다는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나뭇잎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의 자아는 쪼그라들었다.


-여행의 이유, 노바디의 여행 中 / 김영하 저 -



이 문장을 읽으며 몇 개월 전 나,

그리고 여전히 인정을 갈망하고 있는 내가

먼저 보였다.


24년 1월 말

'너는 어떤 존재일까'라는 궁금증과 설렘만

가득 품은 채 딸을 만났던 그 순간.


거의 23시간을 진통하고서

두 번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의 산을 넘어

무탈히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했다는 사실이

트로이 영웅 오디세우스만큼이나

날 의기양양하게 만들어주었다.



출산의 순간뿐 아니라 지금껏 내가 생각한 나는

나름 '섬바디'였다.

지금까지 나의 커리어를 잘 유지해 왔고

새로 배우는 일도 척척 잘했고

사람과의 관계도 좋았다.

하고자 하면 뭐든 해낼 수 있는 나라고 생각했다.



자정이 넘어서야 병실에 돌아와서

남편과 출산 에피소드를 영웅담처럼 되짚고

아기의 모습이 어땠는지 앞다투어 나누며

밤늦게 출산 소식을 카카오톡으로

여기저기 알렸던 그날 밤.

기쁨만이 가득 찬 '섬바디'의 순간은 아주 잠시였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쪽잠을 자고 일어나

맞이한 아침은 도파민보다는 코티졸이 가득했다.


나는 아이의 인생의 어떤 것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끔찍하게 다가왔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아기를 낳은 거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은

여러 범죄와 사고가 이미 내 머릿속을 뒤덮고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의 파도 속에 던져졌다.


두려웠다.

너무너무 두려웠다.


그렇게 기쁘기만 할 줄 알았던 육아 여정이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완전히 새로운 낯선 여정의 '노바디'로




첫 6개월 동안은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누군가를 의지할 수 있었던 상황에도

내가 다 하려고 했고 혼자서도 잘 해내려고

무던히 애썼다.


조리원 퇴소날,

설 명절 연휴기간이어서 산후도우미님이

바로 오실 수가 없어 첫 시작을 친정엄마와 함께했다.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손바닥만 한 생명체를

이제는 전문가 없이 먹이고 재우고 씻겨야 하는 사실이

나의 모든 '날'을 곤두 세우게 만들었다.


내가 신입 간호사였던 시절,

선임들의 눈총과 한마디 한마디가 시리게 아팠던

그 순간을 재차 경험하는 듯했다.

늘 손은 적고 일은 많은 병원에서

업무에 빨리 적응해 민폐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손을 보태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나는 내 아이를 돌보는 일이

새로 빨리 적응해야 하는 일로 입력이 되었고,

늘 그래왔듯이 같은 방식으로 출력했다.



모유수유를 성공적으로 하려면

조리원에서부터 아기와 합을 맞춰두어야 한다고

비싼 돈을 주고 쉬러 간 조리원에서

새벽 수유콜을 전부 소화해 냈다.

첫날 나의 얼굴을 본 조리원 동기가

입소날과 달리 퇴소하는 날

나의 얼굴이 부쩍 상했다고 하더라.


친정엄마가 와 계신 동안에도

목욕은 늘 내가 담당했다.

조리원에서 가르쳐 준 정석대로 해야 했다.

나는 모든 방면에서

정석대로 살아온 인생이 아니었음에도

내 아이는 목욕조차 그래야 했다.


일찍이 수면 패턴을 잡아야 한다며

30분 가까이 내리 우는 아이를 째려보며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고

기싸움을 했더랬다.



병원에서와는 달리 아무도

나에게 당장 베테랑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또다시 신입이 되어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누구의 인정이 그토록 필요했을까.

아기? 남편? 친정엄마?

돌이켜보니 그것은 자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혼자서도 잘 키우더라"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생전 처음 만나는 낯선 육아 여정에서도

'섬바디'가 되고 싶었던 나


자꾸만 넘실대는 불안의 파도 속에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심지어 친정엄마에게도

나의 요동함을 보이지 않고

그 모든 파도를 되려 만끽하는

베테랑 서퍼가 되고 싶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았는지

다행히 아이는 순했고 건강했고 잘 자라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6개월이 지나니 엄마인 내가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이제 혼자 앉기도 하고, 밥도 먹게 되자

다시 말해 조금 살만해지자

온갖 촉을 곤두세우고 지냈던

그 간의 긴장이 풀렸던 걸까.


베테랑 서퍼는 온데간데없고 불안의 파도에

자꾸 치이는 나만 남았다.

자만이 꾸며낸 나의 모습과

실제 나의 모습은 괴리가 컸다.

이런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 자꾸만 쪼그라들었다.


"아기 참 잘 키웠다."

"어쩜 너는 둘째 키우듯이 능숙해?"

라는 말로는 나의 인정 욕구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실상은 그렇지 않기에 더욱 나를 작아지게 했다.


내가 원한 나의 정체성은

‘아기 잘 키우는 엄마'가 아니었나.

나에게는 무엇이 필요한 걸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엄마 개인의 삶에 대한 인정이 필요했다.

내 '섬바디'를 되찾고 싶었다.

내가 나의 것을 통해 인정의 언어로 채워졌을 때

나는 충만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아이와 함께 행복한 육아를 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되찾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 어쩌면

잠시 '노바디'의 삶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의 '나'라고 생각했던 정체성을

잠시 묻어두고 다가오는 파도에 몸을 맡길 때,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자만하지 않으며 겸허히 받아들일 때

늘 가지고 있었지만 자각하지 못했던 '섬바디'를

생각보다 빨리 발견하고 회복하게 될지도.


그러니 현재의 '노바디' 라이프를 잘 즐겨봐야겠다.


새로 주어지는 여러 도전과 낯선 길 위에서

조급해하지 않고 순응하며 잠잠히

새로운 '섬바디'를 기대하며 나아가보자.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