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말말

때론 싫었지만 그것이 사랑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by 새하루

나와 똑 닮은 아기를 보며 다시 꺼내어보는

나와 엄마의 기억들.

엄마의 진한 사랑을 느꼈던 작은 순간들과

무심코 던진 엄마의 말과 행동들이 가시처럼 콕콕

박혔던 순간들이 공존한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가시인 줄도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알았다. 그것이 상처였음을.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저 깊이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엄마의 말이 있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엄마 품을 벗어난 듯싶어도 그 말이 아직도 나를 멈추게 만들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엄마 품에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슬쩍슬쩍 떠오르는 기억에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싶어 무한히 따뜻해졌다가 나도 모르게 엄마의 싫었던 모습을 하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나와 아기가 겹쳐 보여 울컥하기도 한다.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새 묻어 있는 엄마의 모습들.


나는 엄마의 어떤 말이 좋았고 어떤 말이 싫었을까.


떠올려보니 좋았던 말들은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반면에 싫었던 말들은 당시 엄마의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담겨있다. 하지만 내가 엄마가 된 후 같은 상황으로 돌아가보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해서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1. 좋았던 말과 행동

"사랑해"

"예쁜 똥강아지"(엉덩이를 토닥이며)

"자랑스러운 딸"

배방귀와 쭉쭉이(팔다리 스트레칭)로 아침을 깨울 때

매일 밤 내가 잠들어 있을 때 뽀뽀를 하며 내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을 때

(엄마의 손길에 혹은 목소리에 살짝 깨어 눈은 감은 채 가만히 듣다 스르륵 다시 잠드는 그 시간이 좋았다.)



2. 싫었던 말과 행동

(내가 꿈을 이야기할 때마다) "돈이 많이 들어서 안돼."

"너는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그걸 안 해."

"내가 널 잘못 키웠나 보다."

"착한 딸" (나도 욕심부리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참았다. 그걸 착하다고 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남들에게 할 때 (나는 수치심에 예민한 아이였던 것 같다.)



엄마도 사람이다. 연약한 육체 안에 갇힌.

아이가 처음 태어난 순간에는 너무 소중해서 온 촉각을 아이에게로 집중하며 이 세상 최고의 엄마가 되리라 다짐하지만 1살만 지나도 그 집중력이 흐려지고 소중함에 익숙해져 버리는 것 같다. 내가 잠깐 눈 돌려도 되겠지, 잠시 누워 있어도 되겠지 싶어 순간 소홀해질 때가 수도 없이 많다.

SNS 중독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아이 앞에서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면 18개월 아이는 보란 듯이 "엄마악!"라고 부르며 나를 왜 보지 않느냐고 혼낸다. 날카로운 엄마 소리에 황급히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18개월 아기도 말에 뉘앙스가 있더라.

더군다나 신체 에너지가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을 때 아기가 보채기라도 하면 나의 예민도는 급격히 상승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기에게 눈빛으로 화를 내며 짜증 섞인 말투로 대하고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1살 이전에도 이미 엄마의 말과 표정을 파악해서 부정어인지 긍정어인지 분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도통 제어가 되질 않는다.

이처럼 모든 엄마들이 어느 순간에나 다정하고 완벽한 엄마이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연약한 육체에 갇혀

그럴 수가 없다.



나의 엄마도 역시 사람이었다.

결혼 후 서울에서 분가해서 살던 엄마, 아빠는 내가 3살이 됐을 무렵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증조할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아직 결혼 안 한 삼촌들까지 같이 사는 시댁에서.

4남매 중 중간에 낀 엄마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오히려 막내 이모가 책가방을 들어줄 정도였다고 한다. 신혼 때는 할 줄 아는 요리가 많지 않아서 라면을 제일 많이 얻어 드셨다는 큰 이모부.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엄마가 금수저 집안의 자식은 아니었어도 꽤나 보호받고 귀하게 자랐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엄마가 강원도 시골의 시댁살이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열 식구의 아침을 차려야 하고, 아침 먹고 정리하다 보면 새참시간이라 부지런히 새참도 챙겨서 논으로 밭으로 배달해야 한다. 새참 배달 후 돌아오면 또다시 점심시간.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의 정석 시간표이다. 점심 먹고 설거지하고 조금 쉬려고 하면 여기저기서 엄마를 찾는다. 그렇게 쉴 틈 없이 여기저기 불려 다니다 보면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또다시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되고 저녁엔 아이 둘을 씻기기까지 해야 하니 더 분주할 터였다.

농촌의 일상만 나열해도 이렇게 바쁜데, 그 와중에 시어머니와 그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까지 함께 사는 삶이라니 숨이 막힌다. 엄마가 늘 소화 장애를 달고 살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런 엄마의 유일한 안식처인 교회마저도 할아버지가 은행상회에서 술을 마시고 올 때면 핍박을 했던 터라 마음 편히 다닐 수 없었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는 어린 내가 오빠와 놀다가 문득 엄마를 찾으러 가보면 엄마는 방 한편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전화기에 대고 끅끅 울고 있었다. 내가 방문을 연지도 모른 채. 눈치 빠른 나는 엄마를 부르려던 입을 틀어막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다시 내가 있던 자리에서 잘 노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엄마의 힘든 마음과 눈물을 모른 척해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정서 상태에서 아이 둘 육아까지 해야 했으니 오죽 힘겨웠을까. 유아교육과 출신이라 누구보다 아이 양육에 자신 있는 엄마였을텐데, 그런 엄마마저도 모든 상황에서 완벽할 순 없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건 당시 나의 엄마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나에게 사랑을 주었다. 매일 밤과 새벽에 나를 위해 기도했고, 나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무엇보다 나와 오빠의 곁에 늘 있어주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때때로 엄마가 힘들 때 올라온 부정적 사고가 나에게도 영향을 주었지만,

그때의 말들이 여전히 기억 속에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제 나에게 가시였던 그 시절 엄마의 말들을

흘려보내자. 그 말들에 매인 어린 나를 좀 놓아주자.


엄마도 어쩌면 본인의 말을 후회하곤 했던 걸까?

그것을 만회하려 나에게 사랑을 넘치게 표현했던 걸까?

어찌 됐든 나는 그 사랑을 먹고 자랐다.



난 이제 엄마품을 떠났다.

오롯이 혼자서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엄마의 자리에

이제 내가 서 있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 필요한 따뜻한 품을 만들어주려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엄마가 처했던 힘든 상황들이 다른 모습으로 올 때가 있을 거다.

그때 나는 엄마처럼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사실 자신은 없다. 그럼에도 꾸준히 노력하겠다. 사랑을.

내가 내 아이를 어떠한 흠도 상처도 없이 키우리라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다. 얼토당토않은 욕심이다.


그렇지만 딱 한 가지 선언할 수 있는 것은 내 딸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다.

사랑은 늘 최고의 것을 준다기보다 언제라도 기댈 수 있는 사람으로 곁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엄마가 어떤 힘듦에도 꿋꿋하게 엄마의 자리를 지켜냈듯이 나도 아이 곁에 있어주기를 포기하지 않겠다.



그런 나를 보면 언젠가 아이도 엄마의 완벽하지 않은

모습들도 조금은 이해해주지 않을까. 때론 나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입어도 우리 엄마와 아빠가 날 사랑한다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을 수 있기를, 그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