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
엄마가 되고서야 나에게 정말 좋지 않은
사고의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중 하나는 나의 힘듦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난 늘 힘든 상황에 맞닥뜨리면 남들과 비교했다.
힘들다는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어디선가 들었던
남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기가 태어나고 1년 정도는 남편이 주 6일 출근에 늘 밤늦게 퇴근을 했고 친정, 시댁 모두 멀어서 양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기에 손이 제일 많이 가는 시기의 육아를 나 홀로 감당해야 했다.
문득 힘들다는 감정이 올라올 때면
나는 황급히 차단했다.
'누군가는 싱글맘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100일 갓 지난 아기를 데리고
일을 하기도 하는데 너 정도면 힘든 거 아니야.'
'어떤 아기는 너무 예민해서 엄마가 잠도 못 잔다는데,
50일부터 통잠 자는 순한 아기를 육아하면서
힘들어하는 건 사치야.'
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육아할 때뿐만 아니라 나는 신입간호사였던 시절에도
내가 겪었던 힘든 상황에서 가장 최악의 조건에 처한
동기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의 힘듦은 그저 엄살로 치부해 버렸다.
나조차도 나를 동정하지 않았다.
너는 정말 좋은 세상에 태어난 거야.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거야.
예전에는 육아템이랄 것도 없었잖아.
'그러니 너는 힘들다고 말할 권리도 없어.'
라고 누군가 귀에서 계속 말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신입 시절에는 내가 마음 놓고 의지했던 당시 남자친구에게 나의 속내를 털어놓고 전화기에 대고 몇 시간이고 펑펑 울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홀가분했고 괜찮으니 언제든 때려치우라는
남자친구의 말이 썩 위로가 되었다.
그 든든함으로 그 시절을 버텼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육아를 하면서는 당시 남자친구와 동일인인 남편에게 내 속마음을 말할 수가 없었다. 주 6일 출근하는 외벌이 남편에게 짐을 지워주기가 싫었다.
예전처럼 때려치우라는 위로를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누가 아이를 본단 말인가.
외로운 싸움이었다.
그래서 나는 괜찮아야만 했다. 아니 괜찮은 줄 알았다.
내가 모유수유부터 아기 목욕, 밤잠 재우는 것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해내는 꽤나 능숙한 신입 엄마인 줄 알았다. 나만 아는 자부심에 취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말하는 유니콘 베이비가 우리 딸이었고, 여전히 easy baby이다. 거기다 나는 간호사 출신이었다.
간호사와 육아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전혀 없음에도
나는 간호사니까 남들보다는 아기를 잘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만함이었다.
양육의 대상인 딸을 그저 내가 일터에서 돌보아야 하는
작은 환자처럼 인식을 했던 것이다.
프라이빗 신생아실에 취직을 했달까.
단지 그 환자가 나와 남편을 쏙 빼닮았을 뿐.
그렇게 처음 만난 육아는 나에게 일이었다.
잘해야 하는 일.
내가 조금이라도 빈 틈을 보이면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올까 봐 착착착 모든 게 맞아떨어지도록 애를 썼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변수가 많은 육아의 전쟁터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육아는 구멍 투성이일 수밖에 없고 난 그 구멍을 홀로 다 메울 수 없다. 육아는 힘들다.
꾹꾹 눌러온 감정이 터지고 만 건 아이가 6개월을 지날 무렵이었다.
내 감정을 무시한 대가는 꽤나 매웠다.
사소한 일에 의기소침해지고 남편에게는 자꾸만 화가 났다. 좀처럼 울지 않는 내가 이유 모를 눈물을 쏟기도 했다. 가슴이 조이는 듯 답답하고 우울한 날들이 지속되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남편에게 솔직하게, 정말 오랜만에 나의 힘든 감정을 공유했다.
남편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아서 몰랐다고 한다.
나는 바깥에서 일을 하고 오는 남편이 피곤할까 봐
내가 온 집안일과 육아 관련 일들을 도맡아 하면서도
나 역시 힘들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아도 남편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을 해주기를 내심 바랐다.
그런데 내 마음 같지 않은 남편의 모습이 반복되니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나도 힘들다는 거였다.
힘에 부쳤고 내가 홀로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을 일찍이 인정하고 남편과 육아든 집안일이든 지혜롭게 분업하면서 나 자신도 돌봐야 했었다.
나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에 있어서 솔직해야 했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이상하리만치 과도한 오만함도 버리고.
어쩌면 나는 비겁했기 때문에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사실 힘든 건 수없이 많았지만 매번 힘들다고 말하면 내가 그동안 혐오했었던 '엄살쟁이'가 될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그 엄살쟁이는 사실 내 안에 있었다.
그것을 감추려고 이것저것 부풀려 보았지만 허상이었던 나, 진짜 나라고 착각했던 모습을 아이를 낳고서야 비로소 벗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엄살쟁이면 어떠한가.
나는 연약한 사람이다.
완벽할 수 없다.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다.
내가 힘들면 힘든 것이 맞으니까.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 감정에 충실해도 된다.
잠시 무너져도 된다.
본인의 감정을 마주하고 소중히 대할 줄 아는 사람,
그것이 용기 있고 지혜로운 엄마다.
그런 엄마가 비로소 나의 아이의 감정도 소중히 대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