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우신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미분과 달리기』를 파란시선으로 출간했다. 시인은 그동안 시집 『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를 펴냈으며, 2023년엔 ‘내일의 한국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정우신 시인은 “시집 한 권이 대표작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불가능을 꿈꾼다”며, 언어가 가진 이중성―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지시하는 동시에 지시되지 않는 것―에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출해 왔다. 그런 관심이 이번 시집 『미분과 달리기』에도 적용되어 ‘입체-점-선-면-색-육체’의 Ttack 구성으로 추구되는 시 세계가 개성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미분과 달리기」 「파종」 「식육점에서」 등 51편의 시편들은 분절되고 해체된 객체들이 재구성과 재탄생을 통해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포즈를 취하는데, 세계에 대한 단단한 시적 인식을 배면에 깔고 있다.
정우신 시인은 현대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끌어왔다. 시편 곳곳에서 폭력이 자행되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 줌으로 인해 주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대상들을 부각한다. “가슴 전체가 뜯겨 나(기면)”가고, “내장은 깔끔하게 비워(Black sheep)”지며 “절단된 머리가/ 다시 붙을까 봐/ 프레스기에 넣어 버(끈)”리고, “손목을 절단하(네 가지 복제약과 몽키 시티)”고 “꼬리를 잘라 플레이팅(네 가지 복제약과 몽키 시티)”한다거나, “자를 건/ 다 자르고”(초기화) “mm로 분절되”(집락集落)는 존재들이 출몰한다. 그래서 해설을 쓴 양순모 평론가도 “『미분과 달리기』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이는 단연 ‘폭력’일 것이다. 잘게 미분된 후 점차 재구성되어 가는 구성을 보여 주는 『미분과 달리기』에서, 특히 <Track 2: 점>의 시편들은 거의 감정이 존재하지 않은 채 끔찍한 폭력들이 발생했거나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러한 파국적 상황을 시인이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봄으로써 우리에게 “연민과 공포”가 “카타르시스로 대체되”는 경험을 즉각적으로 선사한다.
정우신의 이러한 시적 응전 방식은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독자 스스로 느끼고 그 상황으로부터 발생하는 심리적 맥락을 해방하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박상수 시인은 추천사에서 “희미한 구원을 기다립니다. 아니, 존재의 돌연변이를 기다린다고 말하는 편이 좋을까요”라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미분과 달리기』는 독자의 몫을 많이 남긴 시집이 된다. 이 시집을 읽은 독자들은 획일화된 감상의 틀에 갇히지 않고 각자만의 ‘희미한 구원’이나 ‘존재의 돌연변이’를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미분과 달리기
정우신
바람의 얼굴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봅니다
염소가 발굽을 긁고 있네요
지푸라기를 보다가
콧김이 느껴져
뺨을 긁었습니다
트랙을 달리다 보면
앞니가 시리고
오른쪽 무릎이 절룩입니다
신발 끈이 풀리면 기분이 좋습니다
바닥을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요
금이 간 곳을 한참
들여다보면
개미는 보이지 않고
누군가 술에 취해
골목을 헤매고 있습니다
날벌레를 머금은
가로등
내 허벅지로 퍼지고
뒤를 보지 않고 달리면
지붕 옆으로 무지개가 놓입니다
나는 지금 트랙을 비집고
자라는 풀
내가 흔들리면
염소가 다가옵니다
염소는 트랙에서
들판을 보고
들판은 별을 복사합니다
개구리는 별과 별이
부딪치는 소리를 냅니다
누군가의 한쪽이 기울어 갈 때
나의 얼굴을 열고
움직이는
염소가 있습니다
이제 운동화 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발굽에
풀이 낀 채로
또각또각 뛰어다니는
바람입니다
―『미분과 달리기』, 파란, 2024.
-----------
파종
정우신
내 머리에 꽃 피었는지?
소각장에서 말했지
어설피 때리지 말고 완전히 죽이라고
장난을 장난으로 끝내면
내가 죽을 거라고
너의 판단은 늘 현명했던 것 같아
친구야 난 그 시절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후퇴한 듯해
팬지에 검은자를 흘리고 간 것이
난 너라고 믿는다.
마음이 약한 네가 마음이 더 약한 나에게
들려줬던 말들
계속 맞다 보면 주먹이
검은 원으로 보이는데
그럴 땐 더 움츠려서
점이나 씨앗이 되라고
가볍게
더욱 가볍게
치솟으라고
친구야 넌 똑똑하니까
답을 줄 수 있지?
저 쥐새끼 같은 눈알을 어디에 심어야 할지 말야
―『미분과 달리기』, 파란, 2024.
-------------
식육점에서
정우신
꽃을 보면 식도가 타오른다. 소년은 철을 갈고 찬밥 먹고 어머니께 돈 부치고 기차역, 포구, 공장, 물보라, 연꽃, 백악관, 봄봄 전전하거나 탕진하였다. 절단기가 도는 동안 고기는 식어 가는 것일까 부활하는 것일까. 비린내가 풍기는 곳엔 돈이 돌고 돈이 오가는 곳엔 새끼가 있다. 피는 흘러 흘러 다음 육체를 찾아갈 것이다. 피는 피를 만나 꽃을 피울 것이다. 번식을 할 것이다. 식물의 입장에서 나는 안쪽부터 썩는 잎맥이다. 푸른 구멍을 가진 뼈다귀다. 나는 전생을 걸어 겨우 해가 지는 방향을 아는 돌멩이다. 나는 거울 속에 걸린 소년을 바라본다. 갓 지은 흰 쌀밥에 뭇국을 딱 한 그릇만 먹고 갔으면 한다. 졸린다. 자꾸만 졸린다. 살아야지. 이렇게 살려고 꽃을 꺾은 건 아닌데. 입안으로 가득 찬 흙이 무겁다. 천장에 걸어 둔 갈빗대로 햇살이 예리하게 놓인다. 나는 나의 절반을 툭 잘라 당신에게 준다.
―『미분과 달리기』, 파란, 2024.
#정우신 #정우신 시인 #정우신 시집 #파란 #미분과 달리기 #미디어 시인 #미디어 시in #김네잎 #김네잎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