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인에게 깃든 50가지 문양
“나는 이상해, 겁을 주고, 외롭고, 자신감도 없어, 내겐 가시만 있어. 그리고 누군가 나를 찾아와 주길 원하면서 또 누군가 오는 걸 원하지 않아······.”
“나는 대체 어떤 동물이지!”(돈 텔레헨, 『고슴도치의 소원』 중에서)
상처 받는 게 두려워서, 혹은 ‘나’의 가시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봐, 오늘도 당신은 다가오는 누군가에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지 않았나요? 너무 멀어질까 두려우면서도 가까이 다가가기를 망설이고 있는 당신, 혹시 ‘고슴도치 딜레마 증후군 Hedgehog's Dilemma Syndrome’ 혹은 ‘호저 딜레마 porcupine's dilemma’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요?
복층
우리의 천장은 처음부터 다르다, 너의 것은 마침내 높고 나의 것은 은밀하게 낮다
지난밤 가위에 눌린 너의 기척을 명료하게 읽었다 하지만 깨우지 않았지
아래층에서 동물을 키우는 나와 위층에서 식물을 키우는 네가 너무 멀다
앵무는 조롱 속에서
게발선인장은 창 앞에서
다른 높이로 길들여지고 있으니까
앵무는 짝을 잃고 혼자서도 잘 운다
선인장은 목마름이 극에 달해도 가시만 내민다
그렇게 모르는 척해주는 걸까
서로 다른 취향 앞에서
너의 집착과
나의 애착, 익숙한 목적을 품는다
절박하지 않은 표정으로 나는 끝내 올려다보지 않고, 계단이 어제보다 늘어나서 너는 더 높은 위쪽만 본다
하나의 식탁에서 두 개의 시간이 매일 머물다 간다, 넌 매번 오전이고, 난 매번 오후다
- 김네잎,『문예바다』, 2020 가을호.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살고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각자의 개성과 인격이 다르기 때문에 간극이 존재하죠. 하나의 공간에 두 개의 층위가 존재하는 '복층'처럼요. 우리 어떻게 하면 '함께라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은 서로 바싹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야만 얼어 죽지 않는 답니다. 떨어지면 얼어 죽기 때문에 서로의 체온을 통해 온기를 나눠야만 하지요. 하지만 너무 가까우면 상처가 나고 고통이 찾아옵니다. ‘가시가 서로를 찔러’ 대기 때문이지요. 이동용의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에서는 이러한 일상의 고통을 극복하게 해주는 거리, 즉 ‘서로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이 고슴도치에게도 사람에게도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이런 간격에 대한 지혜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정중함과 예의랍니다. 정중함과 예의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성숙한 인간의 징표라는 군요.
그래서 저는 지금 제가 성숙한 인간인지 곰곰이 반성해 보는 중입니다.
▣ 참고 문헌
1) 돈 텔레헨, 『고슴도치의 소원』, 아르테, 2017, p148.
2) 이동용,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동녘, 2015, P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