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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잎 May 26. 2022

책갈피에서 툭! 떨어진 시

-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에서


나무들은 긴 생각을 지니고 있다. 우리들보다 더 오래 살며, 호흡은 길고 고요하다. 우리가 나무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그들은 우리보다 현명하다.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면서 생각이 짧고 어린애같이 서두르는 우리들은 말할 수 없는 즐거움에 젖는다. 나무들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는다.     


-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이레, p54.           




겨울나무      



    

다 버리고 나면 아름답다 서슬 퍼런 북풍 거칠 것 없이 당당하게 맞고 감히 햇살의 혀를 가지 끝에 꿰어 눈물 콧물 훌쩍거리며 돌아가게 할 수 있는 자, 빈 둥지에 남겨진 새의 목소리를 가끔 휘리링 지상에 던져 우울한 눈빛 건져 올려 층층이 달빛 내려오는 밤 달빛의 등을 툭 치며 눈빛을 건네주는 자, 새들이 날아올라 고요가 흩어지고 잔가지 몇 개 부러지는 새벽이다 북풍에 날려 오는 연한 눈송이 수 천 수만의 입술에 부풀어 오르는 생장점 신열에 달뜬 몸 그 불덩이를 끌어안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자, 한낮의 햇살이 은밀하게 가지 끝에 걸어둔 맑은 눈동자들 찬양의 음표를 그리며 뿌리로 간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린 자, 아름답다     


- 김네잎, 「겨울나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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