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르만 헤세, 『데미안』에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일신서적출판사, 일신베스트북스 11, P120.
기기괴괴
새들이 쏟아지는 마을이다 원주민들이 깃털을 모아 레이*를 만들고 있다 가시 같은 깃털은 자꾸 자라나 나를 덮칠 것 같다 원로 주술사가 다음 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새를 사랑한 사람은 절대로 새로 태어나지 않는다고, 사랑까지 뛰어 넘어야 날개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함께 이야기를 듣던 몇몇은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갔다 금세 돌아온다 맨발로, 모래 해변도 아닌데 신발을 양손에 들고 춤을 춘다 어쩌다 보니 새의 발을 갖게 됐어, 울면서 농담까지 던진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발을 내려다본다 새는 원래 맨발이니까 괜찮아 내가 이야기 밖으로 꺼낸 새는 매우 작았다 새의 얼굴을 한 원주민 여자가 목에 레이를 하나씩 걸어 준다 깃털은 아직 따뜻하고 조금 축축하고 비리다 죽은 새로 만든 걸까 살아있는 새로 만든 걸까 독백이 송곳니처럼 돋는다 허공을 본다 분명 시간을 건너왔는데, 나만 홀로 새가 된 것만 같다
어깻죽지가 간지럽지 않니? 사람의 얼굴을 한 새가 다가 와 귀에 대고 우짖는다 비틀린 목으로
*하와이에서 사람의 목에 기념으로 걸어 주는 화환.
- 김네잎 《상상인》 2023,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