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폴 사르트르, 『구토』에서
나의 생각, 그것은 ‘나’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생각하는 고로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기를 단념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 그것은 무서운 일이다 - 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존재하기를 내가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갈망하고 있는 저 무(無)로부터 나 자신을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나, ‘나’다.
-장 폴 사르트르, 『구토』, (주)문예출판사, (1983)2022, p187.
사라진 장르
1
우리는 다음의 다음처럼 걷는 사람 서로를 각색할 때마다 버려질 시나리오가 필요한데 이별은 우리를 선명하게 부추기고, 우리가 무슨 죄를 숨겨 왔는지 자세를 바꿀 때마다 우수수 쏟아지는 죄목들 뼈와 뼈가 닿는 순간을 지우려고 조명이 깜박깜박 소멸한다 우리는 별빛에도 데이는 사람 숨소리는 자꾸 서걱거리고 독백들이 모여 블랙홀을 구성하는데, 커튼이 열리는 순간 모든 대사가 캄캄하게 허물어질까봐, 모든 가능성을 멈춘다
2
일요일의 뼈를 화요일까지 으스러지도록 껴안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갑자기 환해지면 살아있다고 믿게도 되겠지만, 소실된 심장으로 두근두근 거려도 보았지만, 완성된 포즈로 맞닿은 흉곽에서 서로의 뼈를 더듬다가 흠칫 놀라고 말았지만, 키스할 때 내민 입술과 혀까지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식물은 표정만으로 물음이고 답인데, 왜 쓸모없는 동물성만 몸속에서 들끓었을까 끝내 우리의 역할은 대본에 없는 유령들, 너와 나에겐 암전도 구속이다 오늘부터 우리는 마침내 비인칭이다
- 김네잎, 《열린시학》 2019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