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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msikY Feb 04. 2024

담담한 미역국과 화려한 케이크

나이를 들어감이 더 어렵게 느껴질 때의 이야기

한동안 조용했던 부엌이 아침부터 무척 부산스럽다


달그락달그락 거리기도 하고,

쓱쓱 무엇인가를 썰어가는 소리도 나고,

보글보글 맛있게 익어가는 소리도 들린다


부엌으로 이동해보니 그 부산함 가운데 아내가 있었고,

아내는 주중에 봐온 식재료들 사이에서 한켠에 세워둔 휴대폰 속 레시피를 보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뭣 좀 도와줄까?”


한마디 해볼까 했던 나는 어차피 꿔다놓은 보리자루처럼 걸치적 거리게 될 것만 같아 밖으로 내려던 질문을 삼키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조용히 거실 한켠에 앉아 생각했다


“효도는 장난이 아니구나!”




이번 주는 장모님의 칠순이다.

결혼 후 10년 동안 한결같이 챙겨왔던 생신이지만, 앞자리가 바뀌는 해의 탄생일은 무릇 새롭다.

누가 압박을 준 것도 아니지만 앞자리가 바뀌는 만큼 그 앞년도 보다 새롭거나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들고, 한살한살 먹어가던 나이를 새로운 차원의 레벨로 끌어가는 흡입력이 있는 것만 같다


여기에 공자 선생님이 나이대별 경지를 구분하여 주신 덕분에 해당하는 나이대에 무릇 달성해야만 할 것 같은 퀘스트가 생긴 것만 같고, 그 나이대에 맞는 삶을 살고 있나 되돌아 보게 만든다


종심소욕 불유구 : 마음 가는대로 해도 법도를 넘는 일이 없다


공자 선생님이 주신 칠순의 퀘스트는 무척이나 높은 경지를 자랑하고 있는데, 이 경지를 달성하신 장모님을 아내는 특히 더 축하해드리고 싶어했다. 이런 아내의 마음을 담아 준비하는 메뉴는 다양했지만, 그 중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담담하게 익어하고 있는 미역국이었다. 요즘은 평소에도 자주 먹을 수 있는 미역국이지만, 생일이면 그 의미는 새롭다


“감사“


생일에 미역국을 먹게 된 유래는 다양하게 설이 있지만, 주로 언급되는 이유는 ‘산모의 미역국’이다. 출산 후 약해진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먹었던 미역국을 생일에 다시금 먹으며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새기기 위함이다라는 것이 중론.


이 의미에 따르면 미역국을 부모님이 끓여주신 것은 ‘이 미역국을 먹고 나에 대한 감사를 생각하렴?‘ 같은 애매한 설명이 되지만, 성년이 되어 자식이 부모님에게 끓여드리는 미역국에는 본연의 의미를 찾은 듯 감사와 정성을 다해 드릴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아내가 정성을 다해 끓이고 있는 담담한 미역국 옆에는 화려한 케이크가 자리하고 있었다. 생일을 대표하는 한식 미역국과 양식 케이크의 오묘한 조화라니...

출처 : okchicas

저 담담하고 화려한 것들의 오묘한 조화를 보며 생일날 한식과 양식의 콜라보를 생각해 낸 상황이 무엇일까 상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의 생각 끝에 한국인의 집념이 만들어낸 콜라보로 잠정지었다 . 누가 뭐라 안해도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뜨겁게 살아가는 한국사람들.


뜨거운 민족인만큼, 한살 한살 먹어가며 달성해야하는 높은 수준의 퀘스트를 깨내기 위한 마음에 보다 힘을 낼 수 있도록 한식/양식을 모두 보태어 응원하게 된 건 아닐까? 달성하지 못하여도 아무런 불이익 없는 게임이지만, 혼자만의 싸움을 수행하는 이들을 위한 힘찬 격려로 만들어진 조화가 아닐까 하고, 나는 추측했다



출처 : mangeons bien

어느덧 저녁 상이 차려지고, 가족이 한데 모여 아내가 준비한 미역국을 마주하였다


생일을 축하하는 인사와 함께 다같이 미역국 한숟가락이 목구멍을 넘기며, 준비한 정성에 몸도 마음도 따뜻함을 느꼈다. 그리고 한편에서 조용히 올해 불혹의 생일을 맡이해야하는 나는 조용한 책임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불혹 : 판단에 혼란이 없었다


눈 앞에 펼쳐신 상에서 잡채를 먹을까, 고기를 먹을까 판단도 서지 않는 나에게 아직 불혹의 퀘스트는 멀기만 한 것 같다. 하지만, 돌아갈 수도 도망칠수도 없는 상황 앞에 나는 미역국처럼 좀 더 담담해져 볼까 한다. 케이크처럼 화려할 자신은 없지만, 담담한 미역국처럼 나는 오늘을 맞이하련다.


덤벼라 세상아!




이 글을 빌어 장모님의 생신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저의 어머니와 모든 이 땅의 부모님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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