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msikY Mar 09. 2021

출근길 토스트

아웅다웅 해봐야 한입거리.                          

고소한 버터향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잠이 덜 깬 몽롱함에 취한 채 어디론가 허기진 발걸음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맡게 된다면?

그건 진한 커피 한잔보다 더 강력한 각성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각성제를 무료로 “사용”하게 된 것은 1년 정도 된 것 같다.


집 주변에 오피스가 많아지면서 출근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어느 날 작은 손수레를 끌고 한 아주머니가 등장했다. 리어카를 개조해서 만든 듯한 작고 낡은 손수레. 그 위에 불판과 몇가지 조리도구를 올리고, 간단한 비바람 정도만 막아줄 수 있을 것 같은 천막을 얹은 흉물스러운 가게와 함께 등장한 아주머니의 첫인상은 강렬하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아이스박스 통을 매고 나와 김밥을 판매하던 아주머니의 참기름 냄새에 비하면 덩치만 큰 약골 같았고 김밥의 기에 눌려 곧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상황은 조금씩 뒤집혀 나가기 시작했다. 고객 조사가 끝난 듯 손수레의 등장 시간이 조금씩 당겨졌고, 같은 시간대에 준비되는 음식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선보인 음식은 어묵이었다. 꼬치에 꼽힌 어묵 다발이 가득 담긴 육수를 팔팔 끓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리어카의 존재를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했고, 특히 간밤에 술한잔 기울인 주당들은 그 곳을 지나가지 못하고 어묵국물 한 모금으로 속을 달래고는 했다. 그 다음으로 선보인 음식은 떡볶이와 튀김이었다. 흔하지만 쉽게 뿌리치기 힘든 ‘다들 아는 그 맛’에 그제야 사람들은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출근길부터 강렬한 음식들로 빈속을 채우기 거북했는지 다들 흘깃흘깃 보고만 지나갈뿐 쉽사리 손수레 곁으로 다가가지 못했었다. 그 이후로도 몇가지 메뉴를 추가했지만 여전히 어묵 국물로 속 달래는 주당 몇몇만 보일뿐 꽤 오랜시간 그 손수레를 찾는 사람은 보지 못했고, 손수레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지는 듯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잊혀져 감을 알고 있었는지 아주머니는 조용히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전날은 동료의 퇴사로 진한 술 한잔을 한 터라 유독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출근길 아침이었다. 상하관계라는 부담스러운 짐을 이기지 못하여 공황장애라는 낯선 병만을 얻고 새로운 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나가는 동료를 위한 자리이기에 술자리는 무거움이 가득했고, 그 무거움을 떨쳐내기 위해 작은 추억까지 꺼내 한잔 한잔 술잔을 채워갔다. 그리고 그 덕분에 쌓인 알콜로 지끈한 두통과 허기진 속쓰림이 같이 몰려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하, 뭔가 나를 달래줄게 필요한데!’


따근한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나의 위장에 넣어 줄 것을 고민하던 중, 난데없는 고소한 향이 코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늦잠을 깨워주던 고소하고 기름진 이 냄새! 나는 옛 추억과 위장의 갈급함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겼고, 어느덧 나의 발걸음은 손수레 앞에 멈추었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손수레 아주머니는 토스트를 판매하고 있었고 고소한 향에 끌린 사람들 덕분인지 이전보다 이용하는 사람도 늘어나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토스트 하나를 주문하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순대, 핫도그, 만두 등 관심 없이 지나다니던 사이 메뉴는 다양하게 늘어나 있었고 오뎅 국물 위에는 제 한몸 기꺼이 우려내고 풍욕을 즐기고 있는 꽃게 한마리가 당당하게 손수레를 지키고 있었다. 메뉴가 다양하게 늘어난 덕분에 토스트, 어묵을 먹고 있던 사람들은 제 것을 맛있게 먹다가도 깔려 있는 음식들을 흘깃 보며 식욕을 드러냈고, 드러낸 식욕이 부끄럽다는 듯이 어묵 국물로 죄책감을 씻어내고 있었다.


‘못 먹는거 없으시죠?’


아주머니의 질문과 함께 나의 토스트가 철판에 올려졌다.마아가린이 철판 위를 한껏 휘돌고 나간 그 자리에 식빵 두장이 얹어졌고 고소한 냄새가 요리의 서막을 알렸다.


그냥 먹으면 뻑뻑해서 넘기기도 힘들었을 그 식빵들이 달궈진 철판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지기 시작했고. 식빵의 한쪽면이 채 익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계란을 한알 집어 철판 가장자리에 톡! 하는 소리를 내며 내리쳤다. 톡! 갑작스러운 철판과의 만남에 계란은 힘 없이 속살을 드러냈고, 힘 없이 쪼개진 계란은 양배추가 한웅큼 섞인 통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탁!탁!탁!탁! 기다란 젓가락을 이용해 양배추와 계란을 섞는 손놀림이 경쾌했다.


사진 출처 Food52.com

한껏 섞인 양배추와 계란이 네모진 틀 위에 올려지자 차르르! 하며 크게 온 몸을 흔들고는 맛있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계란이 익어가는 것을 지켜보더니 얇은 슬라이스 햄을 하나 집어 계란 옆에 함께 올려 놓았다. 마아가린을 한껏 머금고 자글자글 익어가는 계란과 햄을 보고 있자니 잠시 진정했던 위장이 다시 난리를 피기 시작했다.


‘나대지 마. 위장아!’


속을 부여잡고 한껏 침을 흘리고 있는 내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아주머니는 서둘러 토스트를 쌓기 시작했다. 맨 아래 식빵 하나, 그 위에 햄, 그 위에 계란부침, 그리고 케찹 듬뿍, 마지막으로 식빵 하나! 다급한 나의 마음과 다르게 토스트는 한겹한겹 차분하게 쌓여갔고, 드디어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게 한겹한겹 쌓어가는 토스트를 보고 있는데 문득 간밤의 술자리에서 동료의 푸념이 생각이 났다


‘이사고 부장이고 어차피 회사 사람이고, 월급쟁이인데 왜 그렇게 못 살게 굴까? 어차피 돈은 사장이 다 가져가잖아!’


그 말에 동조하면 회사의 반역자가 될 것 같은 마음에 간밤에는 술로 웃어 넘겼지만 동료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각자 위치가 다르고 급여가 좀 차이가 나겠지만 어차피 다같은 직원이고 월급쟁이인데, 왜 같은 월급쟁이끼리 이렇게 괴롭히는 걸까? 직급이 올라가면 이 회사가 마치 내 회사인 것처럼 느껴지고 아랫?사람들은 마구 부려도 된다라는 착각에 빠지는 걸까? 대체 그런 착각이 어디서 오는 거지? 당신들도 그저 월급만 조금 더 받는 ‘돈의 노예’인 것 뿐인데 말이야. 노예가 노예를 일 부리면서 주인만 배불리는 구조라..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쓴웃음이 올라왔다


‘다 됐어요. 맛있게 드세요’


아주머니가 먹기 좋게 포장해 내민 토스트를 받아 들었다. 토스트를 한입 먹으려 눈앞에 토스트를 가져간 순간, 문득 회사에서 마주할 얼굴들이 생각났다. 식빵은 신입 ㅇ사원, 그 위 햄은 ㅁ대리, 맨 위 식빵은 ㅅ이사, 난 저 사이 계란 정도 되겠군. 마치 위아래가 바뀌면 안되는 것처럼 한껏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들을 보니 자리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회사의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하나씩 떼놓고 보면 볼품 없고 즐겨 찾지도 않을 것들이고, 누가 위,아래인지 가릴 것 없이 한데 뭉쳐야 맛있는 건데 누가 더 잘났다고 아웅다웅 할 필요가 있나!


왠지 맨 위의 식빵이 거드름을 피우는 듯 빤히 쳐다보는 느낌이 싫어 서둘러 한입 베어 버렸다.


각각의 재료가 씹히며 부드럽고 아삭한 식감을 번갈아 전해 주었고, 군데군데 묻어나는 케찹의 새콤함이 아침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맛있다! 조화롭게 맛을 내는 토스트!

이 토스트처럼 직장 생활도 조화가 중요한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조금 더 평화로운 직장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사님! 화 좀 줄이세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봐야, 밑에 사람들 괴롭혀봐야!

그래봐야 한입짜리 토스트 인것을!   




tip

토스트 식빵은 보통 식빵보다 물기가 적은 것이 좋데요. 그래야 더 바삭바삭한 식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네요!

제가 좋아하는 식빵은 생식빵으로 유명한 ‘타쿠미야’예요. 곡물의 고소함과 우유의 부드러움이 녹아 손으로 뜯어 먹어도 맛있고, 토스트로 구워도 좋아요! 오늘 아침은 간단하게 토스트 어떠실까요?


타쿠미야 : 서울시 마포구 백범로 152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오늘도 밥상으로 퇴근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