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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Blu Feb 22. 2024

그대가 아프지 않은 세상이 올까

힘내라는 말이 위로가 아닐 당신에게 

안녕, 그대. 

웃음이 아름다운 내 사람. 

며칠 동안 힘없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속상함이 컸어요.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무력하기도 했답니다. 당신의 고생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었어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병세는 어떠한 삶도 주저앉힐 수 있는 걸까요? 고개를 세차게 젓고 싶네요. 


 당신을 만나기 전, 교제를 할 사람에 두 가지 조건을 내세웠답니다. '몸이 건강한 사람', '정신이 건강한 사람'. 일찍 이 둘을 내세웠다면 당신은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았을까요? 그럼 우리가 지금처럼 미래를 함께 꿈꾸는 사이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네요. 지금의 저에겐 상상하기 싫은 세상입니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라는 영화를 들어보셨나요? 다중우주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한층 흥미롭게 하는 영화입니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으로 인해 수억 개의 갈림길을 만들어내고 나라는 존재는 상상도 못 한 모습으로 멀티버스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내용이에요. 스포일러가 되니 더 이상 말할 수 없지만, 언젠간 당신과 함께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보고 싶은 영화 중 하나지요. 이 영화를 본 이유로 일상에서도 가끔 다중우주 속, 또 다른 나를 상상해 보곤 합니다. 컴퓨터를 하지 않은 나, 막내가 아닌 나, 여자가 아닌 나, 가난하지 않은 나, 스키니 한 몸을 가진 나... 수천수백 가지를 친 이후엔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엄청난 확률에 감탄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괜히 응원해보기도 합니다. 


 요즘엔 머리를 쓰지 않는 비어있는 시간에 대부분은 당신을 떠올리는데 할애합니다. 당신이 날 바라보며 웃었던 순간들을 톺아보면 괜스레 웃음이 납니다. 이내 당신은 딱 감당할 정도의 두근거림을 알맞게 주는 사람이란 걸 깨닫고 현생으로 돌아온답니다. 나를 웃음 짓게 하는 당신이지만 최근 주변 환경이나 몸 상태로 인해 가라앉은 당신을 지켜보며 말을 내뱉기 어려웠습니다. 나로부터 나오지만 그대에게 미쳐 닿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을 닫고 당신이 아프지 않은 세상으로 찾아가곤 했습니다. 제가 말해줄게요. 편히 봐주세요. 


 버스 가운데쯤에 앉아 있는 당신은 오렌지색 헤드셋을 채로 노을을 바라보고 있어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보니 괜찮은 하루를 보냈나 보네요. 당신은 가끔 '띠링' 울리는 휴대전화에 시선을 보내다가도 이내 창밖을 내다봅니다. 관리하지 않은 눈썹은 정갈히 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한참을 그러다 지팡이를 할머니를 보고 자리를 양보하며 찬란한 미소를 짓습니다. 저를 포함한 버스에 모든 고객은 당신이 보기 드문 멋진 청년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적지 하나 전에서 내린 당신은 속도를 내지 않습니다. 가끔 길가에 핀 꽃을 보고 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도 하네요. 아마도 라켓을 하는 거 같아요. 무슨 음악을 듣길래 어깨가 들썩이는 걸까요. 새소년이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재즈일 테죠. 집 가는 길에 포장한 치킨을 들고 갑니다. 버스에서 온 문자는 치킨을 사 오라는 가족들의 성화였나 보네요. 게으름에 투덜투덜거려도 해주는 당신에게 가족들이 감사함을 전합니다. 그렇게 치킨 닭다리를 야무지게 발골하며 한 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각조각을 나누니 주말이 갑니다. 새로이 시작되는 월요일엔 어떤 일이 생길까 하며 기대로 꿈도 안 꾸곤 푹 잠에 듭니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당신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합니다. 


 나무랄데없이 완벽한 당신이 시기 질투를 받을까 봐 신이 밸런스를 맞춘 걸까요. 신에게 난 분명 착한 아이가 아닐 테지만 기도해 봅니다. 내일은 당신의 상태가 나아져서 나와 마주 보고 웃을 수 있기를. 오늘의 글을 성급하게 줄입니다. 이런 나를 미워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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