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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s 깜빠뉴 Feb 10. 2021

집 이름 짓기, 여유재(與猶齋)

큰 포부를 가지며

사실 집 이름은 안 지으려고 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공대 출신이라 뭔가 실제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이런 것에 의미를 두고 그런 성격이 아니기도 해서이다. 한마디로 극 실용주의 집안이다. 실제로 집 이름을 짓는다고 해서 그 이름으로 집을 부르는 일은 흔치 않다. 다들 아이 이름으로 철수네, 순희네 하지 거창하게 xx재에 살아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그런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으로 인해 마음이 갑자기 바뀐 것이다.

그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때문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뉴스에서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수상을 하자 생가를 보존해야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런데 터무니없게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우리 집을 보존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말 꿈같은 생각.


어쩌면 마음 한 구석에 남들도 하듯이 집 이름이란 것을 지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름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뜻하고 포근해 보이는 이름을 사람들은 잘도 짓던데, 집의 특징을 살리면서 의미도 좋은 그런 이름. 머리를 아무리 굴려보아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나는 나의 한계를 잘 아는 편이다. 그래서 그다지 창작에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모방의 방법을 택했다. 훌륭한 위인이 살던 집의 이름을 따라짓자고 말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다독이면서......


우리 집은 광교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수원이다.

수원 하면 떠오르는 세계문화유산 화성.

화성을 축조하는데 일등공신은 바로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 정약용 선생.


정약용 선생님의 집 이름은 여유당이다.

이는 노자(老子)의 도덕경의 한 대목인 

여(與)함이여, 겨울 냇물을 건너듯이

유(猶)함이여, 너의 이웃을 두려워하듯이

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으로 조심조심 세상을 살아가자는 것이다. 

겨울 냇물은 무척 차갑다. 그 때문에 뼛속까지 추위를 느낄 것이니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냇물을 건너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세상이 두려운 사람은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항상 따르니,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뜻이다.

정약용 선생님의 인생을 봤을 때, 신중함을 강조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내게 자꾸 일을 만든다고 사고뭉치라고도 한다. 신중함은 무슨 일을 덜컥 저지르고 보는 성격인 내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결단력이 있어 이득을 보기도 하지만, 사람을 쉽게 믿고 마음을 터놓아 상처를 입기도 한다. 무슨 일을 결정할 때 그것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든 아니면 아주 사소한 결정이든 언제나 신중함은 필수 덕목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도 내 생각대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좀 더 신중히 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너무 두려워해서도 안 되겠지만, 다른 사람 시선을 생각하면서 사는 상식적인 사람이 되라는 가벼운 뜻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다른 의미로는 그냥 한글 그대로 여유로이 쉴 수 있는 집이라는 뜻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름 모방에도 예의가 있어야 함에 여유당이라고 짓지 않고 당을 재로 바꾸었다.

집 이름에 붙는 것은 가, 당, 재, 헌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재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소박하게 학문을 연마하기 위해 지은 건물에 붙이는 글자라고 한다. 


이제 아이들을 봉준호 감독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어 생가 보존에 대한 논의가 될 만큼 훌륭하게 키울 일만 남았다. 자고로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與猶齋與猶齋與猶齋與猶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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