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결혼에서 필요한 그 무엇
“요즘 어떻게 지내~ 좋은 소식 전해주려고!” 여자 나이 스물일곱, 스물여덟이 되자 청첩장을 전해주며 결혼 소식을 알려주는 지인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1년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달, 매일 무심코 지나치던 거리의 담장 위로 새빨간 장미꽃이 활짝 피어나는 5월이나 청명한 하늘에 몽글몽글 새하얀 구름이 시원한 가을바람을 타고 두둥실 떠다니는 10월이면 하루에 결혼식이 많게는 세 탕까지 겹친 적도 있었다.
나는 주위 친구들보다 청춘사업도 사회생활도 일찌감치 시작한 편이었다. 어릴 적부터 매사에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던 어린이였던 나는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른이로 자라났건만, 유독 결혼만큼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친구들이 앞다투어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반짝이는 티아라를 쓰고 생애 단 한 번뿐인 어여쁜 진짜 공주 놀이를 시작할 무렵, 나는 햇수로 9년을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요즘은 만혼이 추세라는데, 내 주위 사람들은 대체로 결혼이 빨랐다. 심지어 평생 모태 솔로였던 친구도 때 되니 제 짝을 찾아 돌연 기혼녀 반열에 뛰어들었다. 하나 둘 떠나는 친구들의 결혼식을 지켜보는 마음은 기쁘고 부러우면서도 내심 불안하고 초조했다. 정녕 이대로 나만 두고 다 떠날 텐가, 이러다 나만 소외되고 뒤처지는 건 아닐까, 이왕에 할 거라면 나도 20대의 신부가 되고 싶은데.
오랜 시간 함께해 서로 너무도 익숙했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자, 나는 더 이상 20대의 신부가 되기는커녕 낯선 사람과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혼자가 된 지 반년 정도 지나 헛헛한 마음도 아주 조금은 익숙해질 무렵, 한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 20대의 달력이 고작 다섯 장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엄공아, 네가 예전에 나한테 네 친구 현진 씨 소개해줬을 때. 뭐 결과적으로는 잘 안됐지만, 나 현진 씨 정말 좋아했었어. 좋은 친구 선뜻 소개해 준 너한테도 정말 고마웠고. 너 남자 친구랑 헤어졌다는 말 듣고 나도 꼭 좋은 사람 소개해주고 싶었어. 네가 꼭 교회 다니는 남자여야 한다고 했는데, 내가 얼마 전 이직한 회사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 두 명 있어. 한번 만나볼래? 한 사람은 자기 관리를 잘해. 운동 열심히 하고 키도 크고 잘생겼어. 다른 한 사람은 외모는 너 스타일 아닐 수도 있는데, 자수성가형이라고 할까. 대학원도 나왔고, 막 집안이 잘 사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나름 성실하게 살아온 것 같아. 차도 좋더라.”
‘남자 인물 뜯어먹고 살 거냐’는 소리 들을 만큼 반반한 인물의 전 남친과 전전 남친을 사귀어본 나로서는 솔직히 ‘잘생긴 인물’에 대한 기준치가 다소 높은 편이었다. 결혼하면 정말로 남자 인물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니었고, 잘생겼다는 소리 듣고 만났는데 정작 만나보고 실망할 바에야 나는 차라리 성실남을 만나보기로 했다. 기껏해야 월급쟁이인 직장인에게 '자수성가’라는 표현이 어울리긴 한 걸까,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주선자는 나에게 성실남이 일단은 좋은 사람 같아 보이지만, 자신도 얼마 전 막 이직해서 만난 사람으로 오래 지켜보거나 깊게 아는 사람은 아니므로 내가 직접 만나서 나의 안목으로 찬찬히 잘 살펴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소개팅남은 두 번째 만남에서 나와 연애가 아닌 결혼하고 싶다는 확신을 내 비추었다. 당시의 나는 제아무리 사랑해도 탁 놓으면 툭 끊어져 버리는 불확실한 인연에 대한 회의감이 매우 컸다. 무엇보다 견고하고 튼튼하며 안정적인 관계를 갈망하던 나는 그렇게 암묵적으로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을 시작했다. 두 번째 만남부터 시작된 결혼 이야기는 이후에도 자연스레 이어졌다. 결혼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빠르게 추진되었지만 모든 과정은 일사천리로 물 흐르듯 술술 진행되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소개팅남은 이직하기 전 전라도에 살던 자가를 처분했고, 내가 사는 부산에 신혼집을 계약했다. 신혼집 선 장만 후에 양가에 인사를 올렸고, 상견례도 치렀다. 우리는 처음 만난 날로부터 정확히 148일째 되던 날 결혼식을 올렸다. 서른 살이 되기 3주 전, 나는 겨우 턱걸이로 그토록 꿈꾸던 20대의 신부가 되었다.
속도위반을 한 것 아니냐 종종 오해를 받을 만큼 나의 결혼은 확실히 급박한 면이 있었다. 갑작스럽고도 의아한 나의 결혼 소식에 지인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우선 첫 번째 부류는 나의 성급한 결혼 결정을 염려하는 가까운 지인들의 가장 보편적인 반응으로, 일명 ‘경거망동 걱정파’였다. ‘평소 신중하던 네가 아니었냐, 결혼은 장난이 아니다, 그 사람 뭘 믿고 이리도 급하냐,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어떻겠느냐’부터 더러는 ‘결혼이 그 정도로 급했냐, 그렇게 외롭냐’라는 씁쓸한 반응까지 있었다. 두 번째는 나에게 쓴소리를 할 정도로 가깝지는 않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은 이 결혼이 궁금한 경우로 ‘이 결혼 실화냐 감탄파’였다. 이들은 주로 ‘서로 이상형이었나 봐요! 첫눈에 반하셨나요? 서로 잘 통하셨나 봐요. 상대의 어떤 면이 그렇게 좋았나요?’ 하며 영화처럼 서로 첫눈에 뿅 하고 반해 불타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단시간에 결혼에 이르는 로맨틱한 스토리를 우리에게 기대하는 경우였다. 마지막은 아주 소수였지만 절대적으로 나의 결정을 믿고 지지하거나 혹은 세상 이치에 통달해 매사에 느긋함이 있는 부류로, 일명 ‘천생연분설 운명파’였다. 이들은 주로 ‘그래! 결혼할 인연은 다 따로 있더라. 잘 됐어, 인연이면 원래 그렇게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되는 거야. 암만 붙들고 늘어져도 안 되는 사람이 있는데, 일이 착착 술술 풀리는 거 보니 천생연분이네. 네 짝 맞다. 축하해!’
만난 지 고작 두어 달 된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청첩장을 돌리는 모양새라니, 지인들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황당무계하고 용감무쌍한 결정으로 보였을 법했다. 문득 지난 일을 돌이켜 볼 때마다 ‘우리가 정말 만난 지 148일 만에 결혼을 했어?’ 나조차 믿을 수 없을 때가 있을 정도이니까. 당시의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불사했을까. 가끔 남편에게 ‘그때 나 뭘 보고 바로 결혼하자고 했어?’ 물으면, 남편은 나에 대한 강력한 확신의 근거를 대체로 ‘감탄파’가 기대하는 ‘첫눈에 반한 이상형 끌림설’에서 찾았다. (사실 나는 남편이 남다른 나의 생활력에 반했다고 믿지만)
그럼… 나는? 우선 오해 말자. 아무 남자가 강하게 잡아당긴다고 훅 딸려가는 쉬운 여자, 나 절대 아니다. 이왕이면 20대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드레스를 입고픈 로망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 남자 덜컥 붙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설 만큼 맹목적인 결혼을 원했던 사람도 아니었다. 그럼 남편에게 첫눈에 반하거나 서로가 찰떡궁합이었냐 하면, 그것도 전혀 아니다. 남편은 평소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고 우리가 나고 자란 지역이나 말투, 생활방식, 식습관, 취미나 관심 분야는 물론 정치적 성향까지도 이질감이 꽤 컸다. 그나마 종교는 같았지만, 종교적 성향에도 차이가 있었고 같은 종교 신앙이 내 배우자감의 필요조건이긴 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상대가 나의 천생연분이라는 무모한 믿음이나 운명에 끌려 선택한 결혼 또한 아니었다. 결혼 적령기에 찾아온 인연이라는 점에서 타이밍의 기묘함에 대해서는 나 또한 어느 정도 운명파의 의견을 수긍하지만, 천륜이라는 부모 자식과의 인연과 달리 배우자는 분명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나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고, 나는 매 순간 내가 한 선택과 결정으로 내 운명을 선하게 이루어간다고 믿었다.
처음으로 남편을 만나던 소개팅 날, 당시 대구로 갓 이직한 성실한 전라도 청년은 부산 여자의 ‘오빠야’를 기대하며 장대같이 쏟아지는 세찬 여름의 장맛비를 가르며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왔다. 마주한 성실남의 차는 옛 남친의 로망이던 B사의 차였다. B사 차의 외관 특징이라며 전 남친이 일러준 적 있는 뻥 뚫린 콧구멍 두 개를 보는 순간, 나는 그제야 얼핏 생각이 났다. ‘아 그래. 좋은 차 탄다고 했었지’ 소개팅남의 차량 소유 여부나 차종은 애초에 나의 관심 분야가 아니었기에 그에 관해 일절 묻지 않았는데, 막상 눈앞에 외제차를 보자 생각이 조금 복잡해졌다. 좋은 차에 설렜거나 반가워서가 아니었다. 이 사람이 허세가 심한 사람은 아닐까, 겉은 번지르르한데 실상은 고금리 캐피털 대출을 끼고 구매한 차로 다달이 엄청난 할부금을 갚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혹에서였다. 다소간 의심이 해결되기 전까지, 나에게 소개팅남의 외제차는 분명 가산점이 아닌 감점의 요소였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한다는 것이 긴장하여 그만 자신도 모르게 에스프레소 투샷을 주문한 남자를 마주하고, 나는 최대한 진솔하게 가감 없는 내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마찬가지로 내가 상대에게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귀한 시간 내어 먼길을 온 상대의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 수고를 최대한 줄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차해서 아니다 싶으면 한 번의 만남에 선을 확실하게 긋는 편이 상대뿐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여러모로 좋아 보였다. 최단 시간 안에 서로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주로 그간 살아온 삶과 추구하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이를테면 할머니와 함께 산 유년기의 삶, 뜻하지 않게 찾아온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 성실하고 검소한 부모님의 삶의 태도와 양육 방식, 방황했던 어린 시절을 거쳐 빚어진 종교관, 성인이 되어 자신이 이룬 작고 소박한 성취, 사회생활이나 직업 속에서 겪는 좌충우돌과 시행착오, 본인의 이성관, 추구하는 결혼과 가정의 형태, 꿈꾸는 노후와 같은 것들.
그중 자신을 유독 예뻐했다던 친할머니에 대한 그의 추억은 어릴 적 몇 년간 외할머니와 함께 지낸 나의 따스한 기억과 포개어져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아버지가 젊을 때 하시던 수박농사가 망해 겪은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말하며, 비 오는 날이면 세는 빗물을 받기 위해 집안 곳곳에 대야를 놓아두었다는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어, 우리집도 그랬는데! 농사 실패로 큰 빚을 떠안은 뒤로 '빚지지 말자'는 것이 집안의 철칙이 되었다는 말은 왠지 숙연해지면서도 늘 ‘남의 돈 함부로 빌리는 거 아니다’ 말하는 우리 엄마의 말이 떠올라 왠지 흥미진진했다. 퇴직 후인 당시까지도 소 일거리를 놓지 않고 평생 성실하게 일하시며 검소하게 살아온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가진 부모님이 계시는구나’ 생각했다.
화려한 나의 아르바이트 경험에 대해 공유하자 그에 맞서 노가다 현장에서 일 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사실 본래는 왜소한 체격이었는데, (운동의 결과가 아닌) 그때 생긴 자신의 팔근육이라며 자랑하며 팔을 내어 보이는 남자를 보며 날씬한 체형이었지만 평생 공사판에서 일하시며 다져진 우리 아빠 팔의 듬직하고도 다부진 잔근육들이 떠올랐다. 주선자가 나에게 말한 '자수성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력갱생' 정도는 거뜬한 사람이었다. 나는 처음 본 남자가 내게 전한 말의 진위 여부만 확실하다면 어쩌면 이 사람과 나의 미래를 함께 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협력사 혜택으로 대폭 할인받아 구매한 자신의 드림카를 사던 날, 아버지께는 욕을 진탕 먹었지만 너무도 설레어 새 차 냄새가 가시지 않은 첫 차에서 홀로 하룻밤을 지새웠다는 이야기는 곧 나의 색안경을 벗겨주었다. 대기업 다니는 남친에게 선물 받은 명품가방을 자랑하는 친구가 부러워 해외 출장길에 면세점에서 야무지게 할인받고, 쿠폰 쓰고, 사은품까지 챙겨 받으며 오롯이 내 능력으로 산 첫 명품가방을 보고 뿌듯해하던 내 모습과 그런 나를 타박하던 엄마가 떠올라 입꼬리가 올라갔다. 모종의 동질감 같은 것이었다. 만약 그 외제차가 '집에서 사주셨어요' 혹은 '제 수준에 과한데 할부 당겨 질렀어요'였다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 같다. 수포자인 문과생이던 나와 공돌이였던 그의 관심분야는 많이 달랐지만, 공대 출신의 연구원이던 내 형부가 떠올랐고, 클래식을 좋아한다는 말에는 피아노 전공자인 내 남동생이 떠올라 '어쩌면 가까운 내 주변인들과 잘 어울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두 번째 만남에서 강한 확신에 차 '당신은 내가 바라던 이상형이 확실해요. 꼭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꺼낸 그 남자, 지금의 내 남편. 당시 그는 정말 순수한 표현 그대로 과연 나에게 첫눈에 반했을까? 사실이라면 그의 이상형이라는 장진영이나 이효리와 대체 내가 닮은 구석은 어디란 말인가. 아직 풋내가 가시지 않은 열아홉, 스무 살 즈음의 나 역시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진 경험이야 분명히 있긴 했지만, 글쎄. 그것이 소위 결혼 적령기라 불리는 이십 대 후반부터 서른 중반의 성인에게도 적용되는지에 대해서 나는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다. 사람은 상대에 대해 얻은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성과 감성의 영역을 수 없이 오가며 상대에 대한 호불호를 느끼게 되는데, 어쩌면 단순함을 좋아하는 우리의 뇌가 그 모든 사고과정과 감정의 상호작용을 압축하여 단시간에 느낀 강한 호감에 대하여 ‘이상형’ 이라는 짧고 명료한 결과를 도출 해 내는 것이 아닐까.
나는 두 번째 만남에서 나와 결혼하자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남자의 무엇을 믿고 선뜻 그의 손을 마주 잡았는가. 혼기를 놓칠까 봐 성급한 결정을 내리거나 로맨티시스트라서 불같이 활활 타오르는 사랑에 강하게 이끌리거나, 나와 그를 끌어당기는 강한 운명에 이끌리어서가 절대 아니었다. 나는 비교적 현실적인 사람으로 현실 결혼의 세계에서 마땅히 필요한 것들을 고려했다. 나의 과감한 결정은 지금의 이 남자를 빚어낸 삶의 환경과 그 주변인에 대한 확신, 진지하게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삶에 대응하는 태도, 원석 같은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알아보는 남자의 안목에 대한 흐뭇하고도 뿌듯한 감탄, 감정표현에 솔직하고 자신의 감정에 확신 있는 남자의 태도 등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 거기에 약간 더한 것이 있다면, 일생일대의 내 삶을 좌우할 중대한 삶의 결정 앞에 모든 감각을 총망라해 열심히 레이다를 돌리고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나의 결정을 선하게 인도해 줄 신에 대한 믿음도 작용했다.
물론 나름 신중했던 결혼이라고 해서 결혼 후 까지 늘 순조롭고 평화로왔던 것은 아니다. 함께 한 시간이 짧았던 만큼 우리는 서로의 면면을 모두 알지 못했고, 30여 년을 다른 환경에서 남으로 살아온 우리에게는 다른 점이 참 많았다. 단 시간에 가정을 이루고 지낸 5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속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재개하는 등 삶은 계속해서 우리를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데려다주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다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어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수도 없이 싸웠다. 초반에는 그 과정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 '그때 내가 왜 그렇게 경솔했을까' 후회한 순간도 더러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 돌아보아도 그때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조금 더 단단해졌다. 아직도 여전히 투덕거리는 우리 부부는 오늘도 지지고 볶는 무한반복의 과정을 통해 조금씩 더 서로를 알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때로는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며, 때로는 서로 포기하고 수용하며 살아간다. 켜켜이 쌓인 우리의 세월이 서로를 꿈꾸던 진짜 이상형으로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품은 채.
나 그대의 미래가 되겠소
나 괜찮은 남자가 되겠소
나 이 마음 변하지 않겠소
오 나를 믿어요
잘 할께요
싸우고 화내고 울어도 안아줄게
지구는 못 지켜도 당신은 지켜야지
이문세의 '그대 내 사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