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새 챕터
누가 보아도 대학원을 입학하기에 긍정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수련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입생을 모집하는 상담전공 개설 대학원을 찾아보았지만 접수기간이 아직 남은 곳은 단 두 군데뿐이었다. 나는 상담과 전혀 상관없는 불문학 전공자이고 관련 경력도 전무했다. 하물며 상담심리학의 기초지식도 없는 내가 연구계획서를 잘 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심지어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스스로 부담해야 했기에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도 찾아야 했다. 수련을 받기 전의 나라면 이런 상황 속에서 자기패배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새로운 도전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냥 해야 할 것 같았다. 대단한 목표도, 남다른 포부도 없었지만 이 길만은 꼭 내 힘으로 끝까지 걸어 보아야 할 것 같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우선 다 시도했다. 원하는 결과가 있다면 그에 따른 원인을 스스로 만들어야 함을 위빠사나 수련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지원서를 접수한 두 학교 중 첫 번째 학교의 합격자 발표 날이었다. “귀하의 성함이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특별히 놀라울 것도 없는 결과였지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정말 내게 새로운 미래가 가능한 걸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때인가? 의구심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듯했다. 한 달여의 초조한 기다림 끝에 두 번째 학교의 발표 날이 다가왔다. “OOO 님, 합격을 축하합니다!” 내 인생의 새 챕터가 비로소 다시 막을 올린 순간이었다.
그랬다. 나는 프랑스에서 못다 이룬 꿈을 뒤로하고 귀국했을 때, 그때 내 인생은 잠시 막을 내리고 유예된 상태로 머물고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학부 졸업 후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직업에 도전하는 대신 현실과 타협해 회사에 들어갔을 때, 직장과 인간관계 그 어느 곳 하나에서도 원하는 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이건 내 인생이 아닌 양 굴었다. ‘진정한 내 인생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어. 내가 원했던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야.’ 하지만 인생은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살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 나라는 사람의 나이테를 이루고 있었다. 삶은 내가 원하는 것만 취하고 원치 않는 것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으슥한 어딘가에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전체를 통합하는 일이었다. 지나온 모든 삶의 경험이 그자체로 온전한 각각의 챕터였다.
이러한 깨달음 끝에서야 비로소 나는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실패란 없었다. 위기를 뒤집으니 그 길로 바로 기회가 됐고, 나는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새 시작을 할 수 있는 존재였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인생의 본질을 배웠다. 우리는 철저한 인과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내 앞에 놓인 상황이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벌어진 일 같아도, 실은 무수하게 얽혀있는 인과의 흔적인 것이다. 내게 일어난 일의 인과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현상에서만 벗어나고자 고군분투 중이었으니 당연히 진전이 없었을 수밖에.
사르트르는 책임을 ‘각자가 자기 삶이라는 디자인의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내 삶의 디자인은 어떤 모습일까. 중요한 것은 그 모양이 어떻든 간에, 내 맘에 들건 안 들건 간에, 나는 내 작품에 책임을 지는 작가의 본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상황의 피해자로 과거 속에서 무기력하게 떠돌고 있지 않았다. 위빠사나를 통해 내게 삶은 주체성의 발로로 새롭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무상이다. 이 공원, 이 도시, 그리고 나 자신도 무상이다. 사람이 그것을 이해하게 될 때가 오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변하게 하고, 모든 것이 표류하기 시작한다.
- 장 폴 사르트르 『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