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na Apr 08. 2024

극내향인 상담사의 고백

어딘가 고장난 사람 같다는 감각

"저희 딸이 딱 선생님처럼만 컸으면 좋겠어요."


한 내담자 어머니가 부모상담 중 내게 했던 말이다. 호의 가득한 이 말이 왜 내게는 그토록 아이러니하게 들렸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한나(가명)는 내가 상담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났던 아이다. 엄마 손에 이끌려 센터를 찾아온 한나의 주호소문제는 수줍은 성격으로 인한 일상생활의 어려움이었지만, 내가 보기엔 딸을 외향인으로 키우고 싶었던 엄마의 여러 시도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한나는 사실상 아무 문제 없이 생활을 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한나는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딱히 이렇다 할 어려움이 없었다.


"한나가 너무 조용하고 소극적이어서 걱정이 돼요. 학교 끝나면 바로 집 와서 조용히 자기 할 일만 하고... 학교 생활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친구들한테 먼저 적극적으로 말도 걸고 그래야 할 텐데, 너무 얌전하게만 지내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이 말 끝에, 한나가 딱 나처럼만 컸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나를 싹싹하고 활달한 상담사로 봐주신 것에 우선 안도가 되었고, 곧이어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슬며시 미소가 새어 나왔다.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순간의 일탈도 없이 자타공인 극도의 내향인으로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였냐하면, 유치원 때 난 선생님이 일어나 보라고 하기만 해도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였다. 생일자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1월 생일자 일어나 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주목받기가 싫어 짐짓 모른 척 앉아있자 선생님은 나를 콕 찝어 호명했다. "OO이도 일어나야지~" 그 순간의 당혹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수많은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며 박수치는 그 상황이 싫어서 앉은 채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 늦었지만 죄송했습니다.)



어딘가 고장난 사람


나이와 상황만 다르고 맥락은 비슷한 이런 에피소드를 500개도 더 댈 수 있을 정도이다. 말하자면 나의 학창시절은 숨 막히는 내향성과 고군분투하던 일지라고 볼 수 있다. 내향성과 내성적인 성향은 다른 거라고 하지만 내게는 그 둘의 차이가 크게 의미 없다. 내향적이면서 내성적인 나는 어릴 적부터 늘 내가 어딘가 고장난 사람 같다는 감각이 있었다. '내게는 뭔가 문제가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엄마도, 언니도, 선생님들도 나를 이상한 애 취급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사회 전반적으로 내향인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지금이야 MBTI다 뭐다 해서 자신의 선척적인 성향에 대해 진지하게 탐색도 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인식도 유연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나처럼 극도로 내향적인 사람은 어딘가 고장난 사람 취급 당하기 일쑤였다. 내가 유별나게 사람들을 힘들어한다는 것에 나도 모르는 근원적인 수치심이 있었고, 상담 공부를 시작하면서야 그 수치심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나도 나를 수용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타인의 수용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한편으로는 내가 나의 내향성을 보듬어주지 못한 만큼, 같은 고민을 하는 아이들을 만나서 있는 힘껏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에 상담을 시작하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는 어릴 적 나를 내담자로 찾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무서워하고 불안해하는 그 여린 마음을 꼭 안아주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한나도 내겐 그런 아이였기에, 딱 나처럼만 컸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말이 더욱더 절묘하게 다가왔다. 한나와 상담을 진행하면서 아이가 갖고 있는 자원을 발굴하여 북돋아 주는 한편, 어머니께는 아이의 선천적인 성향에 대한 이해를 도우며 종결회기까지 잘 마무리되었다.



이런 나를 잘 부탁한다


사실 내 성향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나도 나름의 저항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떻게든 외향적인 사람처럼 보이려고 갖은 애를 쓰고, 술의 힘을 빌려 맨 정신이라면 하지 못했을 미친 짓도 참 많이 했다. 그러고보니 성인이 된 이후로는 술이 실로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깨고 나면 허상이 되고 마는 술의 특성이 으레 그러하듯, 언제까지고 탁한 정신에만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사이 나이 듦이 선사해 준 자연스러움이 생겼다.


때때로 처음 보는 사이의 누군가가 "E 맞죠?"라고 물을 때면 조용히 실소가 터지기도 한다. 극단적인 내향성 인간임을 고백할 때 간혹 보이는 사람들의 놀라는 표정을 즐기기까지 한다. 그치만 나는 안다. 그 모든 가장은 영원히 일시적인 것이고, 내 뼛속 깊은 곳에 스며들어 있는 내향성이 바로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 할 벗이라는 것을. 나는 언제까지나 타인이 힘들 것이고, 이런 나를 때로는 미워하고 때로는 안쓰러워하며 그렇게 지낼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나를 잘 부탁한다, 나 자신아. 이 세상에서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니까.


(Cover: Minolta-X300)

작가의 이전글 이삿날에 대한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