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던 한 줌의 은빛 위로
바니가 죽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바니는 우리 가족이 키우던 2010년생 요크셔테리어로, 새하얗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밝고 윤기 나는 은빛 털을 지닌 강아지였다.
바니가 우리집에 오게 된 것은 순전한 우연에 의해서였다. 생후 3개월이었던 아기 바니는 모견과 함께 버려졌다. 견주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바니와 모견을 말 그대로 집에 '놔두고' 떠났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이 버려진 강아지들의 사연이었다. 그 후 바니는 세 번의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다 엄마 친구네 집에서 임보 중이었고, 엄마는 우연히 친구네 집에 방문했다가 이 말도 안 되는 사연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아기 바니를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당시 우리집은 이미 푸들 모녀를 키우고 있던 터라 "개 두 마리나 세 마리나, 그게 그거겠지"라는 마음과 더불어, 너무나 작고 앙증맞아서 버려졌다는 사실이 더 대조적으로 느껴지는 이 아기 강아지를 차마 모른 척 두고 올 수 없었다는 게 엄마의 변명이었다.
사실 우리 엄마는 개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엄마의 마음에도 걸릴 정도였다니, 바니의 깜찍함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당시 난 수능을 딱 일주일 앞둔 고3이었는데, 바니를 보겠다는 일념하에 수능 전날까지도 야자를 땡땡이치며 집으로 뛰어가기 바빴다. 그렇게 그 작고 빛나는 은색 털뭉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이전까지 푸들만 키워왔던 우리 가족에게 바니는 정말 생소한 생명체였다. 당연한 소리지만, 같은 '개'여도 각자가 고유한 성격과 행동패턴을 지닌다는 것을 바니와 함께하면서 알게 되었다. 바니는 놀랍도록 순하고 착한 강아지였다. 흔히들 요키는 앙칼지다는 편견이 있는데, 우리 바니는 살아생전 사람에게나 다른 동물들에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순한 성정을 지녔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산책 도중에 사나운 개들이 바니를 향해 짖거나 물어도 낑 소리 한 번 못 내고 가만히 물릴 정도였다.
그런 바니가 작년 5월, 우리 가족을 영영 떠났다. 나의 살아 숨 쉬던 한 줌의 위로 같던 존재가, 그 따뜻하고 부드럽던 은색 털뭉치가, 내 곁을 영영 떠나버렸다. 참 좋은 계절에도 떠났다.
생각해 보면 우리 바니는 효견이었다. 13년 동안 살면서 어디가 크게 아팠던 적도 없었다. 그래서 더 바니의 마지막이 충격이었는데, 아침까지만 해도 괜찮던 강아지가 그날 밤부터 갑자기 숨을 헥헥대기 시작하더니 손쓸 새도 없게 14일 만에 그렇게 조용히 떠나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그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았다. 바니의 상태가 이상해지기 시작한 그날 밤은 내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날이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와 눈물 콧물을 다 빼며 이별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려고 누웠는데, 나와 함께 침대에 모로 누운 바니의 숨소리가 묘하게 가빠왔고 그때부터 나는 불길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의 몇 달은 내 인생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힘들고 슬픈 시기였다.
말하자면,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존재들이 모두 나를 떠나는 기분이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를 매몰차게 홀로 두고 훨훨 날아가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직 네가 필요한데, 내 마음이 닿기도 전에 이미 저 먼 곳으로 떠난 느낌이었다. 나는 아직 네가 필요해. 나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단 말이야. 네가 없이 내 일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내 마음이 얼마나 절절하고 구슬펐는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그들은 하루아침에 내 삶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아, 이별이 이렇게 아픈 거였지. 잊고 있었다. 하나와도 아픈데 둘과 동시에 이별하는 법은 배운 적도, 겪은 적도 없었기에 면역이 되어 있을 리 만무했다. 특히나 바니는 내게 피부와 같은 존재였다. 잘 때도, 먹을 때도, 쉴 때도 늘 나와 함께 했던 피부 같은 존재. 그런 바니 없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바니가 아프던 2주 동안 바니의 상태를 살피느라 새벽에 몇 번이고 깼던 것들이 어느새 몸에 배어 바니가 떠난 이후에도 날 잠들지 못하게 했다. 당시 나는 새 회사로 이직을 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라, 휴가를 내거나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었다.
불면의 날들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여서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정신과 의사는 펫로스가 사람이 사망했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야기한다고 설명해 주었고, 그 말은 실로 위로가 되었다. 근데요, 선생님. 제가 사실 남자친구랑도 헤어졌거든요. 이 말을 하면서는 왠지 모르게 조금 창피했다. 강아지와의 이별은 그 힘듦을 충분히 납득받을 수 있으나, 고작 연인과의 이별은 아픔의 핑계가 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근데 당시의 나는 지금 이토록 힘든 것이 바니를 잃어서인지, 남자친구를 잃어서인지 완전히 분간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지금 당장 난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을 정도로 힘들다는 것, 그뿐이었다. 수면제를 먹기 시작해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길어진 밤 동안 나는 반추하기 시작했다. 사전에 마음의 준비를 했다면 이 이별이 조금은 덜 고통스러웠을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내가 어떻게 채비를 했어야 이 불가피한 헤어짐이 조금은 덜 아팠을까? 하지만 분명 나는 바니가 노견의 범주에 들어가면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남자친구와의 끝도 늘 현실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있지 않았던가. 그렇게 충분히 방어적으로 굴었음에도 현실의 이별이 주는 고통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미련하긴, 아무리 준비를 했어도 넌 아플 만큼 아파야만 했을 거야.
실로 그렇다. 내가 겪어내야만 하는 절대적인 고통의 양을 지키기 전까지는, 나아지고자 하는 그 모든 노력들은 일시적인 마비에 가까울 뿐 사실상 아픔의 본질을 건드리지는 못한다. 아파해야 하는 만큼 아파야 하고, 슬퍼해야 하는 만큼 슬퍼해야만 한다. 나는 그 좋은 계절을 지나 한 해가 저무는 시점에까지 정말 구구절절하게, 구질구질하게 아파했다. 그렇게 찌질할 수가 없었다. 멀쩡히 기분 좋게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난데없이 오열을 하고, 세수를 하면서는 이게 지금 물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참 열심히도 울었다. 사람이 이렇게 울어도 괜찮나? 싶을 정도로 울었다. 이렇게 하면 조금은 마음이 나아질까, 싶어서 주먹으로 가슴을 쳐가며 울기도 했다.
그 시간들을 지나오며 감정에도 사계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어도 아름다울 때가 있는가 하면, 내가 손쓸 수도 없게 우수수 낙엽이 지는 때도 있는 것이다. 여름이 덥다고 울고, 겨울이 춥다고 울어도 방법이 없는 일이다. 그저 겪어내는 수밖에... 계절은 자신의 일을 하고, 사람은 사람의 일을 한다. 감정은 감정의 몫을 다 하고, 나는 내가 할 몫을 다 해낸다.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두 존재와 아주 아프게 이별을 하며 배운 것이다. 여기에는 지름길도, 편법도 없다. 그저 필요한 만큼을 겪어낼 뿐.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날이 좋아서, 빵이 맛있어서, 다가오는 주말이 설레서, 온갖 이유로 그들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그럴 때면 여전히 마음이 저릿저릿하고 가끔 눈물을 한 두 방울 흘릴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왜 아직도 같은 이별에 슬퍼하는 거냐고 나를 나무라지 않기로 했다. 나는 여전히 애도 중이지만, 이 슬픔들이 나에게 새로이 준 선물을 아주 아주 귀하게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계절이 슬프면서도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