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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앱 Mar 10. 2021

한국 단편소설의 가장 '트렌디'한 2차 창작

[레드컬튼상영작] 뮤지컬 '얼쑤' 리뷰

한국 근현대 단편소설은 중, 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하지만 학교를 떠나 성인이 되고 나서는 서서히 잊혀 가기 일쑤다. 분명 특유의 재미와 감동, 해학이 담긴 말 그대로 ‘명작’이지만, 원작 소설 이후 제대로 된 2차 창작물이 만들어지지 않아서다. 10대 시절 한때는 문학소년, 문학소녀였던 우리가 단편소설 대부분의 줄거리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뮤지컬 ‘얼쑤’는 그렇게 희미해져 가는 한국 근현대 단편소설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품이다. 단순히 소설을 뮤지컬 작품으로 리메이크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KBS 만화 시리즈 ‘옛날 옛적에’의 은비 까비, 배추도사와 무도사처럼 사랑스러운 화자를 설정하고, 신선한 배우들을 통해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판당’(판소리 하는 당나귀)들이 소개하는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효석)과 ‘봄봄’(김유정) ‘고무신’(오영수) 등 세 작품 속 드라마는 그 어떤 현대극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공연은 세 명의 판당을 중심으로 세 가지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나열하는 옴니버스식 구성을 취한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장터를 전전하는 장돌뱅이 허생원의 첫사랑이자 끝사랑 스토리를, ‘봄봄’에서는 양반가 데릴사위 머슴이 점순과 혼사를 치르기 위해 장인과 담판을 벌이는 과정을 다룬다. ‘고무신’은 엿장수와 식모로 일하는 남이 사이의 짧은 로맨스를 뮤지컬로 재구성했다. 세 단편은 ‘남녀상열지사’를 공통분모로 각각 추억의 낭만, 해학과 코미디, 신파적 드라마로 이어지며 로맨스의 층위를 폭넓게 그린다.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 넘버, 한국적 요소를 차용한 무대 연출은 다른 어디에도 없는 ‘얼쑤’의 핵심 강점이다. 퓨전 국악에서 힙합 배틀에 이르기까지 주요 넘버들은 각각 OST 음원으로 발매되도 손색없을 만큼 트렌디하면서도 편곡 완성도가 높다. 부챗살과 종이에 그려진 그림으로 형상화된 무대 배경 연출 역시 한국적 여백의 미를 효율적으로 담아낸다. 보름달이 뜬 밤, 나룻배가 떠 있는 바다 등 수묵화처럼 연출된 배경은 극에 대한 몰입도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상황별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베테랑 배우들의 무대 장악력은 ‘얼쑤’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하다. ‘사랑가’와 ‘태평가’ ‘아리랑’ 등 익숙한 민요 넘버들은 캐릭터들이 처한 상황 속 적재적소에 쓰이며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배우들 역시 대사와 노래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더한다. 특히 극 후반부 ‘고무신’에서 다음날의 만남을 기다리는 엿장수와 떠나야 하는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는 남이의 듀엣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엔딩 신이 연상될 만큼 아프고 또 아프게 다가온다.



말하자면 뮤지컬 ‘얼쑤’는 가장 한국적인 만듦새로 더할 나위 없이 참신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셈이다. MR 없이 연주까지도 라이브로 진행되는 ‘얼쑤’의 음악 연출은 오케스트라나 밴드 편곡과는 색다른 국악 앙상블로서 마치 국악 공연을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가야금과 피리, 생황, 해금, 장구, 북 등 국악기들은 배우들의 판소리와 나란히 어우러지고, 뮤지컬 넘버는 물론 극 중 효과음에도 사용되며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얼쑤’를 두고 이 시대 가장 완벽에 가까운 한국적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다.



뮤지컬 <얼쑤>

연출: 우상욱
출연배우: 권태진, 조현식, 김은영, 강인대, 김유성, 최광제, 이상택, 김상두, 박희원, 윤정훈, 김대웅, 박정은, 이설, 김현지, 이원민, 정가람, 박진, 박한들
제작: 우컴퍼니
공연일시: 2020년 11월 5일~15일
공연장소: 유니플렉스 1관


*뮤지컬 <얼쑤> 실황 영상은 3월 중 '레드컬튼프리뷰X플앱'에서 스트리밍으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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