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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앱 Apr 28. 2021

나는 엄마를 못 본 척한 적이 있다

[레드컬튼X랜선관극]연극'환한 밤' 리뷰

오래전 옆에 누워서 칭얼대던 아이는 / 누구보다 당신을 더 사랑했다 확신할 수 있지만 / 고백할게요 나 거리에서 당신을 지나친 적 있어요 / 같이 살면서 같이 지내면서 못 본 척 지나친 적 있어요 (가을방학 '동거’ 노랫말 중)


고백하건대, 어린 시절 어느 날엔가 엄마를 못 본 척한 적이 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는 엄마를 의도치 않게 마주한 순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깜빡한 준비물을 갖고 교실 밖 복도에 나타난 엄마를 봤을 때 그랬고, 동네 번화가를 거닐다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걷는 엄마를 봤을 때도 그랬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 순간 왠지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이었달까.


연극 <환한 밤> 스틸컷


연극 <환한 밤>은 이런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거리두기'란 말이 그야말로 대표적 일상어가 된 요즘, 자발적으로 혼자가 되어 안전하다고 느끼는 현실이어서 더더욱 그렇다. 인간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감으로써 성립되지만, 우린 때때로 소통을 단절하고 차단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켜내려 한다. 정작 무엇으로부터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환한 밤>은 이런 미묘한 거리두기의 감정을 한 10대 청소년에 대입해 그려낸다. 그리곤 결국 형언할 수는 없는 울림과 공감을 자아내는 데 성공한다.

 
주인공은 서울에서 강원도 소도시로 이사 온 은영이다. 부모의 사정 때문에 전학 온 그는 새 집도 학교도 친구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관심을 보이는 같은 반 아이들에게 데면데면한 태도로 거리를 두고, 집에서는 엄마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은영은 하교 후 집에 가지 않고 학교 교실에서 밤을 지새우게 되고, 우연히 만난 영지와 속내를 터놓고 대화하며 위안을 얻는다.


연극 <환한 밤> 스틸컷


<환한 밤>은 줄곧 차분하고 조용하게 서사를 이어간다. 청소년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 학교폭력이나 왕따 문제를 전면에 내걸지도 않는다. 은영은 강압적 부모나 짓궂은 친구들로 인한 피해자가 아니고, 도리어 자신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을 따돌리는 쪽에 가깝다. 반 대항 학예회 참가를 위해 같이 춤 연습을 하자는 친구들, 학교생활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는 엄마에게도 은영은 벽을 쌓고 소통을 차단하기 일쑤다.


 극 중 은영의 이러한 태도는 청소년기 특유의 위태로운 자존감과 정확히 맞물린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판잣집 생활을 하고, 교복을 물려 입거나 휴대폰이 정지되는 상황은 서울에서 누려온 많은 것들을 잃은 은영에게 유독 아프게 다가온다. 이런 은영이 택한 방법은 다름 아닌 거짓말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심적 고통을 엄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


연극 <환한 밤> 스틸컷


학교 교실과 집을 오가는 은영을 중심으로 친구들과 엄마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버무린 서사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큼 배우들의 대사와 상황을 설명하는 내레이션도 또렷한 메시지를 문학적으로 전달한다. 극 중 내내 흐르는 단출한 피아노 앙상블 역시 몽환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하며 말 그대로 '환한 밤'의 이미지에 주효하게 작용한다. 연극 <환한 밤>이 청소년을 넘어 한때 청소년이었던 우리에게 작지만 긴 울림을 남길 수 있는 이유다.


연극 <환한 밤> 포스터


연극 <환한 밤> 실황영상

작: 김아정
연출: 신진호
출연배우: 안현정, 오남영, 이은지, 최이레, 김혜령, 정단비
제작: 극단 비밀기지
공연일시: 2020년 10월 24일
공연장소: 스튜디오76


*연극 <환한 밤> 실황 영상은 '레드컬튼프리뷰X플앱'에서 스트리밍으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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