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어서

오랜만에 동료 브랜디와 만나 수다를 떨었습니다. 형식상 회의라고는 했지만, 실은 좌담에 가까웠던 거 같아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그동안 차마 텍스트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고민과 실패와 무력감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동료 이전에 아주 가까운 친구이자, 비건지향인으로서 서로 의지해왔던 사이였기에 눈빛만으로도 그동안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때로는 용기 내어 말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나만 이런가’ 싶어 괜스레 서운하고 외로워져서는 나의 추함을 살며시 감춰버린다는 걸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고, 들을 수 없으면 말할 수도 없으니까요.

감정이란 전염되기 쉽기에, 기쁜 이야기는 쉽게 말할 수 있으나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꺼내기 어렵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나 사실 힘들고 외롭고 우울했어’ 같은 말은 타인에게 선뜻 털어놓기 꺼려집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무리 나의 힘듦을 얘기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히려 힘듦을 이야기할수록 안에서 무언가 차오르게 되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게 제 동료이자, 친구인 브랜디였죠.

대체 브랜디의 어떤 점이 우리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제 생각에 브랜디는 듣기와 말하기를 참 잘하는 사람인 거 같아요. 듣기와 말하기라니, 너무 뻔한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는데 진짜예요.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걸 넘어서, 상대방이 고민하는 것과 듣고 싶은 말들을 꿰뚫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말하기도 조언이나 충고를 던지는 게 아니라, ‘나는 이랬어’와 같이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줘요. 브랜디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 사람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구나’ 하고 자연스레 알게 되죠. 그러니 나도 진심을 다해 브랜디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요. 그렇게 열심히 듣고, 말하다 보면 각자의 슬픔이 더 이상 나만의 슬픔이 아니라고 느껴져요. 어쩌면 우리가 대화를 하지 않아서 그간 서로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6월에 이엪지가 여름 방학을 가지면서 한 가지 다짐한 것은, ‘자주 만나 이야기하기’ 예요. 이번 상반기에는 올리브도, 브랜디도 각자 할 일이 많아서 서로 대화할 시간이 많이 부족했던 거 같아요. 뉴스에 없는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에디터들 간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야겠죠. 잘 쉬고, 많이 이야기 나누고 오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즐거운 6월 보내세요!

From. 올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