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일상] 나의 그리스식 시골 밥상 5
나는 원래 요거트를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그만이다. 특히, 그릭 요거트는 씹힐 정도로 되고 묵직한 질감에 목이 메이는 경험을 한 후,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리스 현지에 와서 접하게 된 그릭 요거트는, 없어도 찾게 되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그리스에서 먹는 그릭 요거트는, 한국에서 먹는 그릭 요거트와 많이 달랐다. 유청을 최대한 짜내어 꾸덕하고 진하면서도, 부드럽고 신 맛이 적은 '한국식 그릭 요거트' 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리스에서 먹는 요거트 맛이란, 그리스 음식이 그렇듯이, 원료와 기본에 충실한 원유 자체의 신선함과, 발효되어 나는 적당히 시큼한 맛이다.
그리스에서 요거트를 즐기는 전형적인 방식은 이렇다.
- 신선한 로컬 요거트를 산다
- 시나몬 가루를 듬뿍 뿌린다
- 꿀을 듬뿍 뿌린다
- 살살 조금씩 섞어가며 떠먹는다
물론, 기호에 따라 과일, 견과류 등 좋아하는 토핑을 얹어 먹어도 좋다. 하지만, 시나몬, 꿀, 요거트의 삼합 조합만으로도 기가 막히다. 신선한 원유가 발효되어 적당히 시큼하고 살짝 톡 쏘는 맛은, 달콤한 꿀과 스파이시한 시나몬과의 밸런스를 완벽히 맞춰준다.
한국의 그릭 요거트와 그리스 현지의 요거트 차이점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다. 또한, 전세계 시장을 겨냥하며 대량 생산하는 유명 브랜드( Fage, Delta, Mevgal 등 )들은 일부 예외가 될 수도 있다.
첫째, 한국인이 사랑하는 꾸덕하고 진한 한국식 그릭 요거트에 비해, 그리스에서 먹는 그릭 요거트는 그렇게 꾸덕하지 않다. 크리미 하되, 풍부하거나 혹은 가벼운 질감으로 부드럽게 떠먹을 수 있다.
둘째, 그리스 요거트 중에는 소젖 뿐만 아니라, 양젖 요거트와 염소젖 요거트도 많다. 전통적으로는 양젖이 더 일반적이다. 각자 고유의 맛과 특성이 다르다.
셋째, 목장에서 시작한 유제품 전문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요거트만 전문으로 하거나, 혹은 유제품이 아닌 타제품을 같이 취급하는 브랜드는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각 지역의 목장에서 직접 중소규모로 생산하는 로컬 메이커가 즐비하다.
넷째, 그리스에서 먹는 요거트는 기본적으로 원유와 발효균 이외에 첨가물이 없다. 설탕도 당연히 노노. 따라서 한국에서처럼, 굳이 '무첨가, '무가당' 이런 문구는 달려있지 않다. 대신, 지방 함유량이 %로 표기되어 있을 수는 있다.
다섯째, 생산 시즌마다 변하는 온도에 따라 발효 정도가 다른지, 시기에 따라 맛과 산도가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투박하다. 하지만, 건강하게 발효된 신선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리하자면,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식재료 본연의 맛과 신선함에 집중하는 그리스식 식탁의 특징을 요거트에서도 느껴볼 수 있다.
그리스에 와서 나는, 요거트를 즐겨 먹는 여자가 되었다. 특히, 코르푸 이웃 지역인 Epirus (이피로스)의 특정 목장에서 생산한 양젖 요거트를 좋아하는 나만의 취향까지 생겼다. 삼합의 밸런스 정도와 톡쏘는 입체적인 맛이 내 취향의 기준이다. 출출할 때 간식으로, 혹은 식사 후 디저트로 나의 식탁에 꾸준히 올랐다.
다만, 이러한 소규모 생산 요거트는 마트에 재고가 한두 개씩밖에 없거나, 며칠째 안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리스 친구 설명으로는, 양들이 보통 아기 양에게 젖을 물리기 때문에, 원유 확보와 요거트 생산이 제약적이라고 한다. 판매자들의 재고 관리와 공급망 체계가 허술해서가 아닐까. 의구심이 스멀스멀 들기도 했지만, 내가 직접 확인해 볼 길은 아직 없었다.
결과적으로, 양젖 요거트는 보이면 사두는 나의 '쟁여템'이 되었다. 보통 물건 쟁이는걸 싫어하는 내가, 양젖 요거트는 쟁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고백하건데, 나는 양젖 요거트를 먹을 때마다, 풀밭에서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토실토실한 양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귓전에는 양들의 목에서 '딸랑'거리는 앙증맞은 벨소리와, '베에에~~~' 하는 귀여운 양 울음소리가 맴돈다.
2023.10 , Daej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