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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엄마, 안 맞는 엄마

by 세상에

"이번 주 토요일에 뭐 해? 센토사에 같이 루지 타러 갈래?"

"그래 좋아!"


근처 콘도에 살고 있는 아들 친구 닉의 엄마가 주말 데이트를 제안했다. 워낙에 아들과 친한 친구이고 그전에도 같이 놀러를 간 적도 많았기에, 쉽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집에서 아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자기는 주말에 루지 타는 것 말고 다른 것을 하고 싶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루지 사진도 보여주고, 친구 이름도 거들먹거렸지만, 아들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결국 닉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야만 했다. 길고 긴 주말에 아들과 뭘 해야 하나 걱정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편했다.


닉은 아들의 싱가포르 첫 번째 친구였다. 2학기 시작 첫날 같이 입학을 한 닉은 중국에서 왔다. 닉도 엄마와 둘만 싱가포르에 와 있는 기러기 가정이었고, 길건너에 있는 이웃 콘도에 살고 있었기에 하교도 등교도, 심지어 주말에도 가끔 만나 함께 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놀이터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낯선 싱가포르의 국제학교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닉은 밝고 건강한 아이였다. 잘 웃고 장난도 잘 치는 구김살 없는 장난꾸러기 만 5세 남자아이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치과 의사였던 닉의 엄마는 아이의 안전과 건강에 무척 진심이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정글짐에 올라갈라치면, 그녀는 정글짐 밑에서 아들을 밀착마크했다. 먼발치에서 아이의 동선을 눈으로 좇고 있는 나와는 달랐다.

아이들이 속도를 조금이라도 내서 씽씽이를 탈 때면, 그녀는 큰 소리로 아들을 불러 자기 옆에서 같이 가게끔 했다. 쌩~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는 나와는 달랐다.

비가 많이 오는 하굣길에 우산도 신발도 집어 벗어던지고 맨발로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달리는 아들을 따라 하려는 닉은, 이내 엄마의 잔소리와 함께 우산 밑으로 쏙 들어갔다.

내가 간식으로 젤리를 싸와 나눠 먹으려고 하니, 그녀는 수제 요거트로 내 손을 막았다. 젤리는 치아에 좋지 않으니 수제 요거트를 같이 먹자고 했다.

점심을 대충 먹고 공원에서 뛰어 놀려는 아들을 따라 일어난 닉은, 밥을 다 먹어야만 일어날 수 있다는 그녀의 말에 다시 앉아 밥을 끝까지 먹었다. 그래서 나도 아들을 불러 세워 가만히 앉아 물이라도 마시고 있으라고 했다.


작은 다름이 모이고 모이니, 나는 조금씩 닉과의 플레이 데이트(Play date 놀이 약속)가 조금씩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나의 자유방임적인 육아 태도가 어쩌면 닉의 엄마에게는 많이 불편한 행동이 되겠구나 싶어서 조심스러워졌다. 어쩌면 내가 너무 공공 예절을 지키지 않는 엄마인가 싶어 나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아들의 마음도 나와 비슷했을까? 언제부터인가 하교 후 아들은 닉과 놀이터를 가거나 수영장을 가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왜 싫냐고 물어보면 자기 마음대로 못해서 불편하다고 했다.


이 세상은 나 혼자 살 수 없다. 특히 나와 꼭 잘 맞는 사람과 늘 함께 할 수는 더더욱 없다. 적당히 맞추고 적당히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인간관계이고 조직생활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다름을 배우는 기회는 많아야 한다. 자기 같은 친구랑만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 다른 생각을 하는 친구와 의견을 조율하는 법을 배워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학교에 가 교우관계를 배우고 규율을 배우는 것이다. 이런 관계 속의 배움은 절대 혼자서 집에서 이루어 질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교 이외의 곳에서 나와 다른 육아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의 관계가, 내 아이에게 무언가 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나? 그런 타인과의 시간이, 아이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나 아니면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배려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시간이었나? 나는 그런 시간이 행복하고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나 아니면 피곤했던 시간이었나....


결국 자연스럽게 내가 먼저 그녀에게 플레이 데이트를 먼저 제안하는 일은 줄어들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산 개울에 몸을 담그는 것을 허용하는 엄마와, 모래밭에 맨발로 돌아다닐 수 있게 허용하는 엄마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있다. 그 시간만큼은 다른 생각 안 하고 아이에게 집중하며 행복한 기억으로 남기에, 나는 그냥 그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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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씽.jpg
<그림같은 숲속의 아이들, 그리고 비오는 날 맨발의 씽씽이. 사랑스러운 순간이다>



20250429_142559.jpg <비의 촉감이 온몸에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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