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이들 픽업 시간에 닉 엄마를 만났다.
이번 5월 연휴에 닉과 그녀는 중국에 잠깐 다녀온다고 했다. 계속 싱가포르에 살 생각이 있는 그녀이기에 연휴나 방학이 되면 중국으로 자주 들어간다. 죽으나 사나 싱가포르에서 1년을 꽉 채워 살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가끔 중국에 왔다 갔다 하는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닉은 이번 8월에 전학 갈 거야."
갑작스러운 그녀의 이야기였다. 그것도 싱가포르의 국제학교 양대산맥 중 하나인 미국계 국제학교로 이번 8월에 옮기기로 했다고 했다. 대기가 많을 줄 알고 인터뷰만 먼저 했는데, 바로 입학 허가를 받았다면서 말이다.
그녀의 전학에 대한 발언은 너무 충격이었다.
원래도 먼 훗날 닉의 독일유학 혹은 미국유학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오늘 아침, 아들 반의 유일한 한국 친구인 브라이언이 나에게 와서 말했다.
"아줌마, 저 전학 간데요. American school이래요"
쿠궁...
뭔가 머리를 쿵 찍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올 때만 해도, 사람들은 싱가포르의 국제학교를 보내면 영어도 확 늘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거라며 좋은 기회라고들 했다. 한국 공교육이 아닌 해외의 국제학교라는 이름만으로도 뭔가 특별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니 얼마나 좋겠냐 했다.
그런데 또 막상 싱가포르에 와 보니, 여기 사람들은 3년은 살아야 아이들의 영어가 완벽해진다며 1년 살기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 더불어 어느 국제학교를 다니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분위기와 성향이 만들어진다며 학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싱가포르의 부모들은 면학분위기, 교사진의 수준, 학교의 시설, IB 성적 등등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하여 더 좋은 국제학교,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위해 애를 쓴다고 했다.
실제로 아들 반의 중국 엄마는 공부를 상대적으로 덜 시키는 국제학교 대신 엄하기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로컬 학교로 전학을 고민한다고 했다. 닉 엄마나 브라이언의 엄마처럼 아예 유치원 때부터 명문 국제학교로 전학을 시켜, 그곳에서 쭉 대학 입시까지 준비하게 하려는 엄마들도 있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좋은 학교로의 전학을 위해서는 입학 테스트를 준비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싱가포르에 7년 산 친구 아들도 전학 재수를 했다고 했다. (첫 입학 테스트에서는 결과가 좋지 않아 전학을 못하고, 두 번째 도전에서 입학 테스트에 통과했다는 이야기다)
나야 어차피 기한에 정함이 있는 해외살이이기에 현재의 학교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새로운 경험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주변 다른 싱가포르 엄마들의 소식을 들으니 나만 1년이 멈춰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급증이 났다. 괜스레 내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뭘 더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혼란스러워졌다.
남들에게 나는 맹모삼천지교였고, 나에게 남들은 또 다른 맹모삼천지교였다.
오랜만에 들어가 본 영어 유치원 카페에서는 이미 7세 반 아이들은 한글 책을 줄줄 읽고, 영어로 서론, 본론, 결론 작문을 하고 있다고 엄마들의 푸념 같은 자랑이 한창이었다. 싱가포르에 있는 천진난만한 우리 아들은 이제야 한글 받침 없는 글자를 더듬더듬 읽고, 1,2,3 형식의 간단한 영어 문장 2줄을 일기로 겨우 쓰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열심히 뛰어놀아 다리가 시꺼멓게 타고, 열심히 수영을 해서 수영복이 늘어지고, 다국적 친구들과 허물없이 놀이터에서 놀고, 비 오면 비 온다고 좋아하고, 해가 나면 해가 나서 좋아하는, 하루에 한 번 꼬박꼬박 낮잠을 자서인지 키가 쑥~ 커진 아들을 보며,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런 생활을 해 보겠나 싶기도 하다.
아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잘 지내고 있다. 나만 중심을 잘 잡으면 된다.
내가 흔들리는 순간, 아들도 흔들린다.
아들과 나의 속도로 천천히 이 1년을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