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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 내 새끼

by 세상에

국제학교에서는 부모만 부지런하면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거리들이 참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이슬람 라마단이 끝나는 날을 기념하는 하리라야(Hari Raya)를 맞이하여 도서관에서 예쁜 밤하늘을 꾸미는 만들기 이벤트가 있었다. 전체 공지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학교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는 엄마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다.

만들기.jpg <만들기에 진심인 아들>


어느 주말에는 STEAM Fair라는 행사를 학교에서 크게 해서, 토요일 하루를 학교에서 보낸 적도 있다. 페이스페인트, 에어 바운스, 물통 놀이, 로봇 조정, 각종 게임 등등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은 모두 마련되어 있었다. 토요일 아침부터 일찍 챙겨 나간 우리는 정말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

STEam.jpg <선생님을 물통에 빠트리는 게임을 제일 좋아했다>


어떤 날은 외부 견학을 가는데 자원봉사를 할 부모를 모집했다. 조금 귀찮은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아이가 어떤 친구들과 어떻게 수업에 참여하는지 자연스러운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나는 첫 번째로 손을 들었다. 덕분에 아들 반 친구들과도 친해져서, 아이들이 나에게 스스럼없이 폭 안기기도 한다.


장보기.JPG <꼬물꼬물 장을 보는 아이들>


이런 다양한 행사 중 하나가 최근에 있었던 Book Fair 행사였다.

책을 주제로 한 다양한 이벤트가 있었는데, 책 속의 캐릭터로 변장하는 날이 있기도 했고, 동화 작가가 와서 아이들에게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중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었던 이벤트가 "Book Cover challenge" 였는데, 이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의 표지를 재미있게 나만의 표지로 재구성해서 제출하는 이벤트였다. 책 표지의 그림을 직접 그린 아이도 있었고, 표지의 모양대로 사진을 찍은 아이도 있었고 작년의 예시를 보니 모두들 수준급이었다.


아들이 만든 작품이 전시가 되면 재미있을 것 같아, 아들에게 해 보자고 제안하니 시큰둥했다. 우주선 그림이 있는 책 표지를 그려보자고 해도 시큰둥, 예쁜 꽃 표지가 있는 책을 보고 꽃을 만들어보자고 해도 시큰둥. 대신 아들은 자기가 만든 레고 자동차를 몇 대 들고 오더니 이것으로 자동차 그림이 있는 표지를 만들자고 이야기를 꺼냈다.

종이에 끄적끄적 글씨를 쓰고, 색칠도 대충 하더니 완성이란다. 더 멋지게 만들어 보자고 아이디어를 내 보았지만, 더 이상은 안 한다는 아들을 재촉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내가 보기에 성의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작품(?)을 하나 완성해서 제출했다. 공유 폴더에 제출을 하고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보니 한숨이 푹 나왔다. 멋진 그림과 사진, 그리고 구성까지, 우리 아들 작품만 딱 5세의 작품 같았다.


한 달 후, 갑자기 선생님에게 이메일이 왔다.

"I have great news. He won the book cover challenge!"

이럴 수가.. 전시만 하는 줄 알았더니 나름 경연이었었나 보다.


아들의 첫 상이었다.

Stephano JK-E2.jpg <원래 만들어 놓은 레고차에 글씨 몇 개 색칠한 작품. 이게 상을 받을 줄이야..>


자식 자랑하는 사람은 팔불출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들이 첫 상을 받아오니, 그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감출길이 없었다.

절로 웃음이 나고, 상장을 들고 있는 아들을 보고 축하한다는 다른 엄마들 앞에서 으쓱하고, 아들의 상 받는 사진을 가족 단톡방에 바쁘게 올리며 행복해했다. 우리 엄마아빠도 나와 동생이 상을 받아오면 이렇게 행복해하셨겠구나 싶어 또 뭉클하기도 했다.


그때 받은 상금으로 아들이 좋아하는 책도 사고, 또다시 자랑도 하고 한참을 들뜬 마음으로 지냈다.


BOOK.jpeg
20달러.jpg
<상을 받은 4.5.6세 대표들과 상금으로 책을 사서 기쁜 아들>


첫 상의 들뜸이 가라앉은 지 한 달.

오늘 아침 아들과 손을 잡고 학교 가는 길에, 아들이 무심하게 한마디 했다.

"엄마, 다음 주에 학교 뮤지컬 하는데 내가 레드팀 중에 색깔 섞는 역할을 한데. 여러 친구들이 같이 하는 줄 알았더니, 나만 하는 건가 봐."


잉?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

다음 주에 5세 반 아이들이 뮤지컬을 하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아들이 몇몇 팀 중 레드팀의 주인공이 돼서 뭔가를 하는 모양이다. 아침에 선생님께 여쭤 보니 "Red team's Main actor"를 맡았다고 한다.


아 또 슬금슬금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오구오구 내 새끼...

엄마는 그냥 팔불출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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