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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보고 싶어...

by 세상에

남편의 잦은 해외 출장과 주말부부의 삶으로 어느 정도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진 가족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남편의 싱가포르 방문과 헤어짐은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았다. 특히나 더 즐겁고 더 행복한 시간 끝의 헤어짐이었기에 더욱 마음이 힘들었다.


지난 2월 싱가포르에 남편이 다녀가고, 꼬박 3개월 만이었다.

그리고 이번 연휴에 우리 세 식구는 가까운 말레이시아의 레고랜드에서 2박 3일 여행을 계획했다.

지인들은 나에게 아이도 있고, 짐도 있으니 택시를 타고 조호바루로 넘어가라고 조언했다. 이민국의 줄도 길 텐데, 아이와 짐을 모두 챙기는 것은 많이 번거로울 것이라 했다.


하지만 뭐든 몸으로 부딪히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기내용 캐리어 2개와 각자의 배낭을 메고, 만 다섯 살 아이와 함께 대중교통으로 국경을 넘어보자 이야기했다. 남편이 있을 때가 아니면 감히 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남편도 자기가 있을 때가 아니면 언제 해 보겠냐며,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이었다. 물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국경 버스 정류장이 있었기에 시도해 볼 수 있기도 했다. 집에서 일반 버스를 타고 국경버스를 타는 곳으로 간 후, 국경 버스를 타고 출국 심사, 또 버스를 타고 입국 심사, 다시 또 버스를 타고 레고랜드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다.


아침 7시에 길을 나선 우리 가족은 2시간 만에 싱가포르 집에서 말레이시아 레고랜드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과정이었다. 부부가 합심해서 버스 이정표를 찾고, 네비로 길을 찾아 걷고, 버스 매연 냄새를 맡으며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과정이, 결혼 전 배낭 메고 지방 여행을 다니던 그때 같아 신이 났다. 꼬맹이 아들도 이 버스, 저 버스 타면서 출입국 심사를 받는 과정이 즐거웠던 건지, 버스 정류장에서 말레이시아 과자를 사 먹었던 것이 즐거웠던 건지 내내 신이 났다.


그렇게 도착한 말레이시아 레고랜드는 장난감 세상이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레고로 만든 수많은 작품들과 만화 캐릭터, 자동차를 포함한 각종 레고 만들기 그리고 신나는 놀이기구까지 하루 종일 놀아도 시간이 부족했다. 둘째 날은 온전히 워터파크를 즐겼다. 특히 큰 튜브를 어깨에 둘러메고 높은 계단을 올라가서 세 가족이 물살을 가르며 내려가는 가족 튜브 워터 슬라이드는 최고 즐거운 놀이기구로 뽑혔다. 체크 아웃을 하는 셋째 날도 역시 레고랜드의 작은 수족관을 들렀다가, 못다 둘러본 혹은 사람이 많아 타보지 못했던 레고랜드 놀이기구를 마음껏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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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엄마도, 아들도 모두 신났던 레고랜드>


숙소도 참 마음에 들었다. 물가가 싼 말레이시아의 에어비앤비 숙소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다락방, 2층 침대, 인디언 텐트, 미니 슬라이드, 인형, 레고 장난감까지 집에 와서도 잠을 잘 겨를이 없었다. 꼬맹이 아들은 '왜 이렇게 재미있는 숙소를 놔두고 맨날 밖에 나가냐'며 10년 전 남편이 베트남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나에게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했다. 말까지 똑같이 하는 이 대단한 유전자의 힘에 남편과 나는 한참 웃었다.

에어비앤비.jpg <너무 신났던 숙소 다락방. 계단으로 올라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다. 출처: 에어비앤비>


어른도 신이 나고 아이는 더 신이 났던 2박 3일을 그렇게 보내며 싱가포르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어김없이 학교에 가기 힘들어했지만, 하교시간에 아빠의 얼굴이 보이니 금세 장난기가 돌아왔다. 그렇게 이틀 더 아빠와 싱가포르에서 일상을 보낸 후, 우리는 공항에 남편을 배웅하러 함께 갔다. 공항에서 아빠와 아들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먹고, 실컷 땀을 흘리며 놀다가 우리는 헤어졌다.

남편은 입국장으로 우리는 지하철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풀이 죽었다.

지하철 옆자리가 비었다며, 공항에 갈 때는 옆자리에 아빠가 있었는데 지금은 비어있어 쓸쓸하다고 했다.

아빠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냐며, 60 밤을 더 자야 아빠를 볼 수 있다는 말에 60 밤은 너무 기다며 슬퍼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 아들은 소파에서 울고 있었다. 원래 샤워를 하고 나면 아빠가 자기에게 놀자고 이야기도 하고, 자기 전에 다리도 마사지해 주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말해줄 아빠가 없다며 서럽게 울었다.

침대에 놓여있는 아빠 베개를 보며, 여기에 아빠가 누워 있어야 하는데 아빠 어디갔냐며, 아빠 베개를 꼭 껴안고 울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눈을 떠서 아빠가 없어서 슬프다고 했다. 아빠를 보고 싶은데 생각만 할 수 있고 진짜 볼 수는 없다며 또 눈물을 글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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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남편과 우리의 빈자리...>


슬퍼하는 아들을 보니 나도 마음이 아파서, 그리고 남편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덩달아 눈물이 났다.


함께했던 시간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그만큼 아렸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헤어져 지내는 건 너무 힘들다'

표현에 인색한 남편의 문자 한 통에 괜히 또 미안하고 미안했다.


아빠가 함께 있을 때에도 '엄마'만 찾는 아들이고, 남편이 함께 있어도 살가운 아내는 아니지만, 아들이나 나나 너무 잘 알고 있다. 아빠는 그리고 남편은 그냥 함께 있는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여보, 60일 동안 서울에서, 싱가포르에서 건강하게 지내다가 또 곧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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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가는 지하철에서 쓴 아들의 디지털 일기. 나비같은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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