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방에 있는 사립 초등/중학교 출신이다.
지방에 있는 학교이긴 했지만, 나름 선진적인 교육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 학교는 지방 대규모 공업단지에서 근무하는 자녀들만을 위한 사립학교였기에, 40년 전에도 회사의 사택에서 학교까지 이동하는 스쿨버스가 있었다. 그리고 학교 내에 취미반 활동이 있어 모든 학생들은 오케스트라든, 미술반이든, 운동반이든 하나씩은 예체능을 해야만 했다. 과학실이나 조리실이 있어서 각종 실습도 직접 해 볼 수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은 한복 입는 날이 있어서 한복을 입교 등교를 했고, 매 5월에는 가정방문이 있어서 선생님들이 각 가정으로 방문을 하셨다.
아무튼 그런 좋은 환경의 학교에서 나는 참 적응을 잘하며 지냈다.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이었고, 공부도 곧잘 했다. 졸업생 대표나, 재학생 대표로 학교 행사 사회를 보기도 했고, 나름의 리더십이 있어서였는지 반장이나 부반장에 매년 당선이 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글쓰기를 좋아해서 교내/교외 글짓기 대회에서도 여러 번 수상을 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학교에 참 자주 오셨다. 어머니회를 하며 선생님들과 만남도 많았고, 학부모들의 취미 모임까지 참여하시면서 엄마들끼리 꽤나 친목 모임을 가지셨다.
하지만 내가 나름 철이 들기 시작하던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엄마가 학교에 드나드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나로 평가받고 싶었지, 학교에 봉사하는 엄마의 딸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학교 행사의 사회를 맡은 것이 반장이었기 때문이었는지, 학교 행사에 봉사를 한 엄마 딸이어서였는지, 내가 교내 글짓기 대회에 수상을 한 것이 내가 글짓기를 잘해서인지, 엄마가 학부모 동호회를 해서인지 늘 의구심을 가졌다.
사춘기였었는지 혹은 늘 그런 생각들이 잠재해 있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고등학교에 들여가면서부터는 선생님들에게 대들기도 하고 학생들을 주동해서 작당 모의를 도모하기도 했다. 뭔가 엄마와 상관없는 내 목소리를 내는 나 자신이 멋져 보였었던 것 같다. 하지만 덕분에 엄마는 학교에 더욱 자주 드나드셨다.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40년 전 엄마는 참 치맛바람이 셌던 엄마야"라고 엄마를 놀리긴 하지만, 여전히 내가 잘해 엄마가 학교에 자주 왔는지, 엄마가 자주 학교에 와서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는지는 딜레마로 남아있다.
그런데 오늘 아들의 뮤지컬 공연을 보면서 나는 순간 40년 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의 5세 반 뮤지컬 공연에는 5개의 팀이 있었다. 공연 흐름 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 같은 아이들이 각 팀에 한 명씩 있었고, 감사하게도 아들은 아들이 속한 팀의 그 중요한 역을 맡았다. (주인공이라고 표현하기에는 50여 명의 아이들이 모두 주인공이기에 '주인공'이라는 표현은 삼가고 싶다.)
200명이 넘는 학부모 앞에서 하나의 퍼포먼스를 한다는 것이 무척 떨렸겠지만, 아들은 침착하게 잘해 냈다. 나는 그런 아들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져서, 공연이 끝날 때까지 눈이 촉촉했다.
어떻게 아들이 그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같은 반 아이들에 비해 영어를 좀 더 알아듣는 것은 사실이었고, 수업시간에 다른 아이들에 비해 집중을 잘한다고는 선생님을 통해 듣기는 했다. 뮤지컬을 준비하는 아트 시간도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공연을 보면서, 각 팀의 대표 역할을 하는 아이들의 절반은 학교 현직 선생님의 자녀라는 사실 또한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학교 행사에 봉사를 매우 자주 갔고, 뮤지컬 수업의 봉사에도 하루 함께해서 뮤지컬 선생님과도 안면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나의 아들이 그 역할을 맡은 것은 꼭 아들의 평소 수업태도에 기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 추론해 볼 수 있었다.
40년 전 나의 엄마....
어쩌면 그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엄마로서의 나.
나의 치맛바람(?)이라 표현하고 싶지 않은 그 어떤 적극인 활동이, 아들에게 기회를 준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완전 문제아였다면, 아예 기회조차 주어지지도 않았겠다 위안은 하지만, 왠지 모를 개운치 않은 마음이 생겼다.
특히 오늘 공연 전 만난 엄마 하나가 "Book fair에서 상 받은 거 축하해요. 엄마가 아주 적극적이셨나 봐요..." 하는데, 나의 무구한 뜻과는 상관없이, 내가 그런 적극적인 엄마로 보였구나 싶었다.
나의 적극적인 활동이 아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고, 그 기회를 통해 아들이 자신감을 얻고, 그런 경험으로 인해 아들이 자립적인 아이가 되는 선순환이 반복된다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이 자칫 아들에게 독이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분명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어쨌거나 오늘, 공연이 끝나고 나에게 폭 안기는 아들을 나는 뜨겁게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