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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사짓는 뚱여사 Feb 25. 2021

부엌에서 뛰는 숭어 다섯 마리

 시아버지의 유일한 취미는 오일장에 다니는 것이었다.


 그 겨울 시어머니가 봄동 작업을 다녀오시면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 따뜻한 방바닥을 벗 삼으셨던 시아버지는 어머님이 집안에 들어오기 전 장화를 벗고 낫이나 호미자루를 정리하는 달그락 소리에 몸을 번쩍 일으키시고 방문을 있는 대로 활짝 열어젖힌다. 

"밥도 안 챙기고 이렇게 늦게까지 밤낮 일밖에 모르지!"라며 그 목청에 화를 가득 담아 뽑아내셨다. 어머니는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낫질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그렇게 또 죄인이 되셨다. 화가 난 시아버지를 조용하게 만드는 것은 어머의 하루 일당의 반을 나누는 것이었다.


 어머님께 받은 돈을 모아서 오일장을 기다리시는 시아버님은 식구들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 점잖고 인자하신 분이셨다. 그래서 오일장에 가시면 생선장수 아줌마들에게 인기가 좋으셨 한다.

 어느 날은 어머님이 장에 가서 조용히 아버님 뒤를 따라가셨는데, 젊은 생선장수 아줌마가 구십이 다 되어가는 내 시아버지에게 

"삼촌! 오늘 뱅치(병어의 진도 사투리)가 겁나 좋아!" 며 아버님을 홀리더란다.

 늙은이가 "삼촌"소리가 좋아가지고 그 비싼 뱅치를 에누리 하나 없이 덥석 사더라며, 그렇게 생선장수에게 아버님이 호구 짓을 당하는걸 직접 보셨다고  내게 이야기해주셨다. 시아버지는 아마도 그런 재미에 오일장을 다니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십삼 년 전, 나는 진도에 내려온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서울애기(시부모님은 진도가 아닌 위쪽 지방은 모두 서울이라 칭하셨다)였는데, 사실 나는 진도에 오기 전까지 비린내가 싫어서 생선을 좋아하지 않았다. 생선 반찬은 일 년에 한 번이나 먹을까 말까 고 더구나 살아있는 생선은 본 적도 없고 생선을 만지는 것을 상상해본 적도 없었던 나였었다. 


 여느 때와 같이 오일장에 다녀오신 아버님은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검은 비닐봉지를 부엌 바닥에 내 던지듯이 내 앞에 툭 떨치셨다. 이게 뭐냐고 물어볼 겨를도 없이

"엄마야!!! 이게 뭐야!!!!"

 나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쳤다.

 순식간에 부엌 바닥에 숭어 다섯 마리가 펄떡펄떡 있는 힘껏 허리를 굽혀 튕겨 오르다 다시 떨어지는 광경이 벌어졌다.  놀라서 얼음이 돼있는 순간 손톱보다도 훨씬 더 큰 숭어 비늘 하나가 내 뺨에 턱 하니 붙었다. 나는 온몸에 닭살보다 더 굵은 소름이 올라왔다.

 이걸 나보고 어찌하라고 이렇게 부엌 바닥에 던져놓으신 건지, 나는 부엌에 다시 가는 것도 겁이 나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시아버님은 너무도 평온하게 "안주하게 이것 좀 썰어봐라! 아랫집 느그 이숙(이모부의 사투리)이랑 같이 먹을랑께!"

"네? 저보고 회를 뜨라고요? 저 회 뜰 줄 모르는데요?"

 놀란 가슴이 진정도 안되었는데, 회를 뜨라니....

 내 말은 들리지도 않으시는지 숭어 다섯 마리와 나만 남겨두고 나가버리셨다.



 머릿속이 캄캄했다. 시어머니와 신랑은 일하러 나가서 내가 구호 요청을 할 사람이 없어서 꼼짝없이 내가 자 숭어회를 떠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번개처럼 불이 들어왔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숭어를 놔두고 그냥 집을 나가 있을까?'

'신랑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해야 하나!'

'아버님은 나한테 왜 이런 걸 시키시는 거지?'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갑자기 분한 생각에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나는 쿵쾅대는 심장을 손으로 누르눈으로는 장갑을 찾았다. 부엌 벽에 최대한 을 붙여서 숭어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리고 천천히 움직여서 장갑이 는 곳까지 게걸음으로 걸어왔다. 장갑을 끼고 망부석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한참을 튀던 숭어들이 아가미를 열었다 닫았다를 하며 진정을 하 시작했다.

 이때가 싶은 나는 부엌 옆에 있는 작은 창고에서 어머님이 쓰시던 가장 큰 찜솥을 꺼내와 뚜껑을 열어두고, 손잡이가 있는 채반을 가지고 부엌문을 다시 열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고 많이 진정된 듯 보이는 숭어 한 마리를 표물로 삼고 채반을 잡고 있는 손을 내밀었다. 심장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내 딴에는 엄청난 용기를 내서 채반으로 순식간에 숭어를 덮어서 눌렀다.

 넋 놓고 쉬고 있던 숭어는 나보다 더 깜짝 놀라 덮어놓은 채반을 뒤집고 이 구역 높이뛰기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스프링처럼 몸을 튕겨 날아올랐다.

 아찔했다. 나도 모르게 내 목청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소리로 악을 썼다.

그렇게 크게 비명을 지르다가 순간 억울함과 막연함이 내 심장에서 올라와 눈물이 되어 흘렀다. 화가 났다.

"숭어회가 드시고 싶으면 당신이 회를 떠서 드실 것이지! 왜 나한테 이런 걸 시키시는 거야!!" 아버님에게 원망을 하다 보니 서러움까지 섞여서 한참을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숭어들도 조용해지고 나도 조용해졌다.

 엉망이 된 부엌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숭어들과 나는 여전히 대치상황 중이다.

회를 떠야 하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던 나는 티브이에서 회 뜨는 장면을 본 기억을 열심히 떠올렸다.

 수건을 하나 가져와 숭어를 살짝 덮었다. 놀라 날뛸 줄 알았던 숭어는 의외로 얌전했다. 고무장갑에 목장갑까지 단단히 무장을 하고 나무도마 위로 숭어를 올렸다. 숭어와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아서 수건으로 숭어 머리 쪽을 덮어놓고 어머님이 쓰시던 사극 드라마에서 나왔을 것 같은 투박하고 두터운 칼을 숭어 지느러미 쪽에 올려서 있는 힘껏 눌렀다. 숭어의 붉은 피가 도마로 흘렀다. 머리가 잘린 숭어 몸뚱이는 요동을 치며 사방에 피를 뿌려대고 있었다. 피를 보니 겁이 덜컥 올라왔다.

 내가 다른 생명체를 죽이고 있다니....  모습은 마치 살인을 하고 있는 살인자처럼 느껴져서 몸이 부르르 떨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이런 젠장!!!! "

"이게 뭐하는 짓이야!!!!"

 속이 부글거렸다. 피 냄새가 역겹고 손이 떨렸다.

 그렇게 또 한참을 숭어와 대치 시간을 보냈다.


 머리가 잘린 숭어의 눈을 차마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덮여있는 수건과 함께 머리를 들어 올려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아직도 속이 메슥거렸지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마무리해야 했다.

 수돗물을 틀어 숭어를 닦았다. 껍질에 핏물이 들어 숭어의 피부색이 어두워져 있었고 피는 계속 흘러내렸다. 이 작은 숭어에게 피가 몇 대야가 나오는 것 같다.

그 피들이 내장에서 계속 흐르는 것을 보고 숭어 배를 갈라 내장을 빼냈다.

 내장을 빼고 나니 한결 만지기가 수월해서 고기를 반토막을 내고 뼈를 발라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뼈를 발라냈다기보다 뼈와 가까운 살을 모두 도려내었다.

어디서 본건 있어서 칼을 옆으로 눕혀 살점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살의 반은 뭉개지고 반은 겨우 한 덩어리씩 회가 떠졌다. 접시에 기를 한 점씩 한 점씩 올리다 보니 조금 헐렁한 한 접시의 회가 떠졌다.


 그러나 부엌에는 아직도 숭어 네 마리가 나를 노려보고 누워있었다.

 더 이상 회를 뜰 자신이 없는 나는 어머님의 찜솥을 부엌으로 가져왔다.

 처음에는 날뛰는 숭어와 내가 함께 날뛰었지만, 두 번째 숭어는 수건으로 덥석 잡아서 순식간에 찜솥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나머지도 그렇게 찜솥 안에 넣고 뚜껑을 닫아 그대로 마당으로 내다 놓았다.


 부엌은 비린내와 피 냄새가 뒤섞여서 속이 울렁거렸고, 바닥에는 숭어 비늘과 숭어가 뿌려놓은 바닷물까지 이런 난장판이 또 없을 것다.

 걸레를 빨아다가 부엌을 정리하고 있을 때 아버님이 이숙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작고 동그란 밥상에 숭어회 한 접시와 초장을 올리고 소주 한 병과 술잔 두 개를 올려 아버님과 이숙에게 내려놓았다. 헐렁한 접시를 민망해하며

"아버님, 제가 회를 안 떠봐서 이 만큼밖에 못 썰었어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버님은 이숙에게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거봐라! 못하는 게 없다니께!"

"알았다고, 나도 며느리 있당께! 자랑 좀 어지간이 하라고!"

"느그 며느리가 이렇게 회도 떠주던?"

"어허! 나도 다음 명절에 우리 며느리 한티 회 좀 떠 달라고 해 블란 마!"

 술잔이 채워지는 소리와 함께 두 분의 웃음소리가 방에 가득 찼다.

 너무 어설퍼서 회 같지도 않은 회를 드시면서도 젓가락 끝까지 어깨가 으쓱해있는 것이 보이는 시아버님을 보면서, 숭어와 씨름을 하다가 아버님을 원망하던 얼음같이 차고 딱딱하게 굳어있던 내 마음이 스르르 여름날 아이손에 있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려버렸다.


 그 후로, 며칠 동안 우리 집 밥상은 숭어 미역국, 숭어찜, 숭어 조림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아버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참 많이 없다는걸 이제야 알게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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