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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her Schipper Mar 02. 2023

Thomas Demand

토마스 데만트 개인전《memo》


에스더쉬퍼는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의 다섯 번째 개인전 《memo》를 2023년 2월 18일부터 4월 1일까지 에스더쉬퍼 파리에서 선보입니다.  


토마스 데만트는 1964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일 뮌헨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서 조각을 공부해 작가의 작품에는 조각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종이와 골판지를 활용하여 장면들(scenes)을 삼차원의 실물 크기 오브제로 재구성하고, 그 장면을 촬영하여 다시 평면 매체인 사진으로 연출합니다. 조각적 재구성을 통해 사진의 매체성을 탐구해 온 것과 더불어, 최근의 작업에서는 아이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로 빠르게 촬영한 장면을 C-프린트, 염료 전사(dye print), 콜로타이프(collotype) 등의 고전적인 인쇄 방식을 통해 사진의 또 다른 매체적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진 작품 8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memo》는 기억, 기억이 이미지의 형태로 기록되는 방식, 그리고 그렇게 생산 및 배포된 기록이 다시 모두의 기억으로 소비되는 방식을 이야기합니다.  


Repository, 2018, C-Print / Diasec, 200 x 210 x 3 cm


<Repository>(2018)는 오랜 세월 동안 토마스 데만트의 협력자였던 알렉산더 클루게(Alexander Kluge)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클루게가 1980년대에 사용했던 뮌헨의 작은 스튜디오를 재구성했습니다. 뉴 저먼 시네마를 이끈 영화감독이자 TV 제작자, 철학자로 활약했던 클루게의 삶의 궤적들을 한곳에 모아 보관해둔 저장소(Repository)입니다. 선반에 진열된 책, 필름 릴스, 비디오카세트, 테이프 레코딩, 그리고 클루게가 인터뷰 연습을 위해 활용했을 마이크가 놓인 테이블과 의자 등이 골판지 오브제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이 장소는 클루게의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저장소(Repository)이자, 클루게에 대한 살아있는 기억을 재구성하는 저장소입니다. 


Memorial, 2023, C-Print / Diasec, 125 x 210 x 3 cm


올해 제작한 신작인 <Memorial>(2023)은 거리의 나무 주변으로 꽃다발, 촛불, 작은 플래카드가 쌓여 있는 임시 추모 공간을 묘사합니다. 이 장면은 언뜻 보기에 밝고 화려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운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2022년 미국 뉴욕 버펄로 총기 난사 사건 이후 거리 곳곳에 마련된 임시 추모 공간들을 언론이 보도한 사진을 인용했습니다. 데만트는 현실을 전달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의도되었던 이미지 그 자체가 미디어 보도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배포되고, 배포되는 즉각적인 방식이 총격 사건 자체에 대한 집중을 유도하기보다는 주변적인 것으로 굴절시키는 방식에 주목하고, 이러한 방식으로 미디어가 우리의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꽃, 촛불, 작은 오브제들에 대한 묘사를 통해 인간의 유한함과 삶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의 오랜 전통을 차용합니다. 


Thomas Demand, memo, Esther Schipper, Paris (2023)
Thomas Demand, memo, Esther Schipper, Paris (2023)


2008년부터 시작된 <Dailes> 연작 역시 미디어가 우리 삶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Dailes> 연작 중 네 작품을 선보입니다. 이 연작은 데만트가 그의 휴대전화로 빠르게 포착한 일상의 작은 사건들을 바탕으로 한 이미지를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염료 전사(dye transfer)로 출력한 것이 특징입니다. 염료 전사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에 컬러 사진을 인화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감광액 층에 청록색, 마젠타, 노란색 등 세 층의 염료가 손으로 도포되는 많은 단계와 공들인 정렬을 해야 하는, 그만큼 제작 시간이 긴 까다로운 공정입니다. 이러한 노동 집약적이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염료 전사 인쇄 기술은 휴대전화 카메라의 빠르고 손쉬운 촬영 방식과 역설을 이루며 데만트의 작업 주제를 한층 더 깊게 만듭니다.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 즉각적으로 생산된 이미지는 소셜 미디어 채널에서 공유되고, 빠르게 확산되고, 우리의 기억은 그렇게 생산된 이미지의 표면에 필연적으로 지배되고, 그 기억은 지속됩니다. 작가는 다른 작품과는 달리 <Dailes>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관객은 <Dailes>를 마주보며 주어진 이미지에 따라 각자의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정물들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빼앗겼던 순간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Daily #31, 2017, dye transfer print, framed, 59,2 x 54,8 cm


동시에 이 연작은 미술사적 도상학의 풍부한 유산을 환기합니다. <Daily #31>에서는 쿠션처럼 보이는 녹색 표면에 오랜지색 속을 드러내는 깊이 베인 자국이 보입니다. 이 작품은 캔버스를 칼로 베어 버린 작품으로 유명한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의 <Cuts> 연작을 간접적으로 인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Daily #36>에서는 칼과 사과 껍질이 놓여있는 도마의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반짝이는 금속 날과 흰 테이블에 반사되는 창문의 부드러운 빛은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나타나는 광택의 표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Daily #36, 2022, dye transfer print, framed, 43,1 x 58,6 cm


Thomas Demand, memo, Esther Schipper, Paris (2023)


<Schilf>(2022)는 독일어로 갈대를 뜻합니다. 갈대가 자라고 있는 물의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물 표면에 하늘이 반사되어 물과 하늘의 경계가 모호해 작품 속 공간감을 확장 시킵니다. 데만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3차원의 오브제를 2차원의 평면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지만, 이 작품은 모네의 수련 정원을 참조한 작품인 <Pond>(2020)를 또 다시 자기 참조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또한, <Schilf>는 언뜻 보면 사진 같아 보이지 않고, 수채화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데, 이는 이 작품이 콜로타이프(Collotype) 방식으로 인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젤라틴 표면에 석판화의 방식으로 인쇄하는 기술로, 19세기 중반에 발명되었습니다. 내구성이 뛰어나고 색상이 빠르게 안착되며, 마치 벨벳처럼 광택이 나지 않도록 마무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Schilf, 2022, Benrido Collotype, 73 x 52,2 cm


토마스 데만트는 이번 전시 «memo»를 통해 3차원의 오브제를 2차원의 평면으로 전환하며 그 경계를 넘나들고, 디지털 촬영 기술과 전통적 인쇄 기술 사이의 긴장 사이에서 발생하는 역설을 통해 사진이라는 매체를 구성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들고, 기록으로서의 사진이 갖는 이미지의 힘과 영향에 대해서 동시대의 상태를 웅변적으로 제시합니다. 



글쓴이: 이채원 (Digital Humanities, University of Cologne)


Photos: 

© Andrea Rossetti 

© Brigitte Lacom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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