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sther Schipper Apr 28. 2023

Stefan Bertalan

슈테판 베르탈란 개인전 《Ends of Research》


에스더쉬퍼 베를린은 루마니아의 중요한 현대 미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슈테판 베르탈란(Stefan Bertalan)의 전시 «Ends of Research»를 2023년 3월 3일부터 4월 8일까지 선보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특별히 슈테판 베르탈란 작품 연구에 관해 정통한 루마니아 미술사학자인 에르빈 케슬러(Erwin Kessler)가 큐레이터로 참여하여, 196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친 베르탈란의 드로잉 작품 50여 점을 선보였습니다. 


Stefan Bertalan, Ends of Research. curated by Erwin Kessler, Esther Schipper, Berlin (2023)


Stefan Bertalan, Ends of Research. curated by Erwin Kessler, Esther Schipper, Berlin (2023)


Stefan Bertalan, Ends of Research. curated by Erwin Kessler, Esther Schipper, Berlin (2023)


슈테판 베르탈란의 작품 조형성은 과학적 연구에 기반합니다. 루마니아가 구소련의 연방국이던 시절, 베르탈란은 사이버네틱스와 시스템 이론 그리고 생물학을 기반으로 루마니아 신구성주의(Neo-Constructivism) 그룹인 ‘111’을 설립하고, 또 다른 혁신적인 젊은 예술 단체인 시그마를 이끄는 주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이론적, 실천적 배경으로 그는 세계를 하나의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보고, 개별 구성 요소들의 상호 연관 혹은 상호 작용을 통해 생겨나는 형태의 패턴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을 ‘연구(research)’합니다. 작가는 플라스틱, 천연 및 합성 섬유, 엑스레이 사진, 알루미늄과 같은 혁신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드로잉, 사진, 설치, 액션, 환경, 해프닝 등과 같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해왔지만, 그의 작품 중 90%는 종이 위에 그려진 드로잉입니다.  


Stefan Bertalan, Ends of Research. curated by Erwin Kessler, Esther Schipper, Berlin (2023)


Stefan Bertalan, Ends of Research. curated by Erwin Kessler, Esther Schipper, Berlin (2023)


《Ends of Research》는 슈테판 베르탈란의 작업 대부분을 차지하는 드로잉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작가 생애에 걸친 작품세계의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보여줍니다. 


베르탈란의 초기 작업을 보면 앞서 언급했던 시스템 이론과 생물학에 대한 관심이 기하학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작가는 형태, 물체, 그리고 그것들의 상호관계를 추상적으로 완벽하게 구조화하는 것에 몰두했습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식물, 바위, 조개껍질, 곤충, 동물, 풍경과 같은 유기적인 자연 구조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같은 인공물의 동적 구조, 그리고 악몽 속 괴물이나 폭력적인 정치 그 자체 등 인간의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시각 구조를 드로잉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시각 형식을 표현해 내는 과정이 작가에게는 ‘연구’이고, 이 연구의 목표는 존재하는 구조들 사이의 깊은 동형성(Isomorphism)을 밝혀내는 것이었습니다. 


Untitled, 1965-1967, ballpoint pen and fineliner pen on paper, 69,9 x 100,2 cm


Untitled, -, pencil and India ink on paper, 44,9 x 62,5 cm


Untitled, 1967-1969, India ink and colored pencil on primed cardboard, 70 x 99,5 cm


Stefan Bertalan, Ends of Research. curated by Erwin Kessler, Esther Schipper, Berlin (2023)


Stefan Bertalan, Ends of Research. curated by Erwin Kessler, Esther Schipper, Berlin (2023)


Untitled (Car models), 1972, colored pencil, felt-tip pen, graphite on paper, 64,9 x 91,3 cm


베르탈란의 70년대 후반 작업을 살펴보면 그가 점차 생태 신비주의(Ecological Mysticism)로 연구 지평을 넓혀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가는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될 수 있으며, 인간의 정신과 자연은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상호 의존하고, 조화를 이룬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자연과의 초월적인 의사소통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갔고, 보편적인 시스템을 초월하는 무질서의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추상적인 구조에 대한 연구는 서서히 외부 세계의 모습을 향해 열리고, 그것과 조화를 이루는 인간적 특성에 대한 연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즉, 초기의 연구가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형태의 완전함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적 연구였다면, 이제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의 생물학적, 우주적 세계와 조응하는 인간적 특성에 대한 연구로 나아가면서, 해부학이 지질학과 우주론으로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나타내는 심리-정치학적 연구로 확장합니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베르탈란의 심리-정치학적 연구는 작품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도상(iconography)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줬습니다. 


Stefan Bertalan, Ends of Research. curated by Erwin Kessler, Esther Schipper, Berlin (2023)


이 시기 이후 드로잉에서 나타나는 신체, 구조, 유기체, 우주가 뒤섞인 묘사는 해부학과 지질학 그리고 우주론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루마니아인으로서 갖는 개인적인 역사적 트라우마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베르탈란은 1980년대 내내 공산주의 정권의 감시를 받았고, 그로 인해 유토피아적 관점과 자연과의 조화와 조응을 이루는 시스템에 대한 믿음 역시 권위주의, 의심, 배신, 억압의 시대에 의해 산산조각 났습니다. 베르탈란의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격자들은 의심과 두려움으로 너덜너덜해져 초라해집니다. 기존의 식물이나 지질학적, 우주적 구조는 왜곡되고 위협적인 자화상으로 바뀌어 버리고, 동물이나 인물의 모습은 괴물 같은 기괴함을 드러냅니다. 억압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비합리성을 폭로하고 저항하는 의지를 드러내는 고백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Self Portrait as a Bugger, 1981, watercolor and pencil on paper, 46 x 78,2 cm


Untitled, 1987, pencil and watercolour on paper, 62,8 x 48,2 cm


Schwangere aufgelegte Frau, 1987-1995, colored pencil and graphite on paper, 83,9 x 59,2 cm


베르탈란은 말년에 새로운 연구를 전개했습니다. 2000년 뇌졸중을 겪은 작가는 예술적 헌신으로서 연구를 계속 이어 나갑니다. 작가에게 유일하게 남은 과제는 자신의 적절한 목적(end)을 탐구하는 것이었고, 그 목적은 끊임없이 시각예술을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 작가는 주로 종이 우측 부분에만 그림을 그렸습니다. 뇌졸중으로 손상된 뇌가 아직 기능하는 구간을 나타냅니다. 


Stefan Bertalan, Ends of Research. curated by Erwin Kessler, Esther Schipper, Berlin (2023)


Untitled, 2007, ballpoint pen, fineliner pen and pencil on paper, 40 x 30 cm


Untitled, 2007, ballpoint pen, fineliner pen and pencil on paper, 40 x 30 cm


《Ends of Research》의 드로잉들은 실험적 관찰 기록, 이론적 성찰, 그리고 정치적 진술로 가득 찬 과학적, 추론적 연구일지 같습니다. 전시의 제목처럼, 베르탈란에게 연구(Research)는 예술을 생산해 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연구 그 자체로서 예술의 목적(Ends)입니다. 작가는 시각 예술을 통해, 즉 연구를 통해 유토피아적이고 모더니즘적인 야망과 역설, 이성의 한계, 끊임없는 내적이고 외적인 이주 상태, 위험하고 연약한 연구자로서의 예술가의 지위,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잡아먹는 불굴의 비판적 의식을 드러냅니다. 더불어 억압, 시대, 질병에 의해 제기된 정치적, 윤리적 문제들을 지적합니다. 베르탈란에게 사회와 예술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함께 끊임없이 지속, 보존해 나가야 할 화두이며, 작가가 던지는 화두와 풍부한 작업은 오늘날 자연과 인간에 대한 전체론적(holistic) 의식을 재고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카롤리나 야부온스카, 토마슈 크렝치츠키, 시릴 폴라체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