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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Jan 31. 2022

2022 제주(포장해 주세요.)

나와 남편은 코로나 이후 외식한 횟수를 헤아린다면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다. 그것도 식사시간이 지난 오후 2~3시, 8시쯤 식당을 찾고 밖에서 손님이 없는 걸 확인하면 들어간다. 무슨 첩보작전처럼 말이다. 작년에 남원에서는 유명한 중식당을 오후 7시 30분쯤 찾아갔는데 테이블이 제법 찬 걸 보고 주변을 한 시간 가량 배회하다 마지막 주문시간에 맞춰 들어간 적도 있었다.


식당, 카페와 같이 사람이 밀집되는 막힌 공간은 피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보니 제주 여행에서 '먹는 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우리 부부의 공통된 주제였다.






제주에서 첫끼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우진해장국이다. 역시나 사람이 넘치다 못해 '와'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다. 포장은 줄을 서지말고 식당 카운터에 가서 주문하면 된다는걸 미리 알고 왔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고 가게 안으로 직행.

출처 : 네이버 로드뷰

"고사리육개장 2개 포장해주세요." 1인분에 9000원.

계산을 하고 5분 정도 기다리니 고사리육개장 2인분이 든 봉투를 가져다준다. 고사리육개장, 쌀밥, 깍두기와 겉절이가 들어있다.


숙소로 들고 와 냄비에 데우는데 "죽 아니야???"남편이 묻는다.

"죽 아닌 것 같은데...."

숟갈로 저어가며 뜨겁게 데워 농협에서 사 온 김치까지 통째 놓고 '호, 호'불어가며 먹는다.

2인분 포장으로 둘이서 아침까지 배부르게 먹었다. 식당에 앉아 분위기를 느끼며 먹는 것도 좋지만 맛집의 음식을 기다리지 않고 숙소에서 편하게 남김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이 포장의 장점이 아닐까.





나와 남편의 여행 스타일은 숙소 근처 배회다. 멀리 가긴 싫고 밥은 먹어야겠고 그럴 때 지도 앱에서 먹고 싶은 메뉴를 검색해서 거리순으로 가장 가까운 장소를 찾는다. 가까운 거리순 목록에 나온 음식점 중 상위 3개 업소를 검색해 오늘의 메뉴를 정하는데 그렇게 알게 된 제주흑돼지 돈가스 집이다.


오래된 간판에는 왕돈까스와 부대찌개가 나란히 적혀있다. 입구에 붙어있는 사진은 돈가스와 삼겹살이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가게 안으로 들어 서니 부대찌개 소주 8병을 마시고 있는 제주 사나이 두 명이 앉아 있다.


"아, 이 가게의 정체성은 제주 사랑방"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돈가스 2인분을 주문했다.



제주 사나이들의 요란한 대화가 오가는 현장에 나와 오빠 주인아저씨가 나란히 앉아 집중이 1도되지 않는 TV를 숨죽이고 바라보고 아주머니는 돈가스를 튀긴다. 15분의 시간이 마치  150분처럼 느껴졌고 드디어 왕돈가스와 눈꽃 치즈돈가스가 나왔다.


1인분에 제주 흑돼지로 만든 생등심 왕돈가스가 8천 원 치즈 왕돈가스가 9천 원이다. 사실 맛은 그리 기대하지 않았는데 제법 맛있는 돈가스다. 역시, 간파 가장 앞자리를 '왕돈까스'가 차지하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제주 사랑방 화순산호에서 밀고 있는 시그니처 메뉴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 제주도에서 왜 돈가스를 먹고 있는거야????




숙소에서 차로 20분이나 걸리는 중문을 찾았다. '회를 사러 가야지~'하고 나온 건 아니고 '술을 사러 가야지~'하고 중문면세점과 하나로마트에서 위스키를 샀더니 저녁시간이었고 그럼 "온 김에 회나 떠가자!"라며 역시 지도 앱으로 가장 가까운 회센터를 검색하고 방문했다.


내가 생각한 회센터는 인천 소래포구 혹은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처럼 횟감을 파는 가게가 늘어져 있고 그중에 우리가 한 곳을 선택해서 구입하는 걸 생각했는데 여기는 이름만 회센터인 그냥 가게다. 35,000원짜리 모둠회를 시키고 30분 정도 기다렸다.


구성은 회, 야채 그리고 3가지의 장 종류가 전부다. 불필요한 곁들임 요리가 없었어 좋았다. 회는 3가지 종류를 담아줬는데 생각나는 건 방어회뿐이다. 숙성회가 아니었기에 쫀득쫀득한 식감보단 싱싱하고 아삭한 식감이었고 고소했는데....

"오빠, 맛있다!!! 그런데.... 난 숙성회 타입인가 봐."




숙소에서 차로 50분이나 걸리는 제주시를 찾았다. 분명 숙소 근처를 배회하면 지낸다고 했는데 참 멀리도 왔다. 제주시까지 찾아간 건 역시나 위스키를 사기 위해서였다. 위스키에 진심인 우리 부부는 마시고 싶은 위스키가 있었고 그게 제주 디오니스토어에 있었기 때문이다. 위스키를 사고 지도에서 성게 미역국을 검색하니 '대우정'이 나온다.


그럼, 포장하러 가야지~

오후 3시쯤 도착했더니 모든 테이블이 비어 있다. '어, 분명 맛집 이랬는데.' 입도해서 처음으로 식당에서 먹기로 결정하고 전복뚝배기를 시키고 성게 미역국 2인분은 포장을 부탁했다.


오락가락했던 제주 날씨 때문에 지쳐있던 몸과 마음에 안식을 제공해준 전복뚝배기 허겁지겁 공깃밥 두 공기를 비우고... 성게 미역국 2인분을 포장해서 나오는데까지 걸린 시간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포장한 성게 미역국은 저녁으로 먹고 다음날까지 알차게 먹었다.

바다향이 강하게 나고 미역이 사각 거리(?)는 식감이다.

나와 남편은 짜게 느껴져 물을 종이컵으로두 컵(미역국 2인분 기준)을 넣어 먹었다.

우리 입에 맞게 간을 맞추니 나는 아주 맛있었는데~

"그냥 쏘쏘~" - 남편.




제주시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대우정 미역국이랑 회를 먹자는 조합을 생각하게 됐고 회를 사기 위해 농협에 들렀다. 한경농협하나로마트 여기 직원들은 우리를 모르겠지만 우리는 '한경농협하나로마트'의 충성고객이다. 제주 흑돼지, 귤, 한라봉, 레드향 등 다양한 제주 특산물을 매 년 몇 박스씩 주문하는 큰손(그래 봤자 10박스 이하) 고객이다. 그러니 제주에서 농협을 간다면 응당 "단골인 한경농협을 찾아야 하지 않아?"라는 나름의 논리를 들어가며 찾았다.


제주 한경농협하나로마트 주차장에 입성하는 순간부터 설렜다. 역시 우리 단골 농협 답게 목욕탕도 있는 아주 핫한 기업이다. (사실 목욕탕이 있는걸 보고 깜짝 놀람!)


방어회를 먹고 싶었던 우리는 하나로마트 내에 있는 수족관 사장님께 방어회를 주문했는데 "방어회는 없고 야드회만 있다."라고 했다. 야드가 뭔지는 모르지만 그게 방어랑 비슷한 건가 보다 생각하고 주문했고 만족했다. 한 마리에 19,000원. 모둠 야채와 쌈장은 하나로마트 야채 코너에서 4000원에 구입.


숙소로 돌아와 바다향 물씬 나는 성게 미역국에 야드회를 먹는데... 역시 나는 숙성 타입인걸 다시금 확인하고...  회는 숙성을 위해 랩핑 후 냉장고 안으로 들어갔다.


덕분에 냉장고에 먹을게 많아졌다.

내일은 식당에서 "포장해 주세요!"를 외칠 필요 없이 온전히 관광에만 집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잠 못 드는 밤...


그나저나, 제주도 관광 어디부터 시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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