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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Jul 01. 2021

일기콘 22일 <삶과 죽음의 경계.>

사람은 누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간다. 그걸 항상 알고 있으면서도 무한한 생명체처럼 하루, 하루를 살아가다 갑자기 '시한부'인생을 통보받게 되면 당장 오늘 죽을 것처럼 무너 진다.


6월 7일 월요일 남편 어깨에 있던 혹이 악성종양 <육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처음부터 큰 병원에서 수술해야 한다고 했는데 육종 이라며 의뢰서를 적어준다. '긴급한 환자'라고 적혀 있고 조직 검사 결과는 생전 처음 보는 영어다. 의뢰서를 받고 육종으로 유명한 서울 모처의 병원에 진료예약을 잡았다. '육종'인 것 같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했더니 가장 빠른 외래진료를 잡아줬다.


육종이 '암'이라는 걸 알게 된 남편은 곡기를 끊고 버쩍버쩍 말라가는 하루, 하루를 보낸다. 울고 또 울고 "장인어른도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나까지 이런 병에 걸려서 너무 미안해..."라면서 우는 이유의 90%는 나 때문이라고 했다. "암이나 감기나 그냥 병이야."라며 위로했지만 나도 마음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남아있던 학교 과제 2개는 간신히 제출했고 디카시 쓰기 모임도 당분간 불참하게 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런 마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깐.


6월 11일 금요일. 아침에 눈뜨자마자 병원 갈 채비를 한다. 사실 눈을 뜰 필요도 없었다. 6월 8일부터 잠 한 숨 못 자고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으니. 가지고 간 초음 CD와 진료의뢰서, 조직슬라이드를 전달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초음파상 보이는 종양의 모양이 나쁘지 않고 크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고 그리고 인터넷 그만 봐" 란다."인터넷에 안 좋은 이야기밖에 없어~ 그니깐 그만 봐."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준다. 수술은 최대한 빨리 하는 게 좋으니 수술 날짜를 잡고 가라고 했다. 가지고 간 조직슬라이드로 한 번 더 조직검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외래진료는 거의 2분 컷으로 끝났다.

수술일정은 6월 21일로 잡혔고 MRI 및 수술 전 검사는 6월 14일, 암 전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PET-CT는 6월 17일로 예약하고 병원을 나왔다.


MRI와 수술 전 검사, PET-CT촬영 모두 예약하려고 했을 때 7월 이후에 가능하다고 했는데 6월 21일이 수술이라고 했더니 MRI는 14일 아침 일찍 PET-CT는 17일 오후 늦게 예약을 잡아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편은 또 부정적인 생각만 하고 나는 옆에서 "의사 선생님이 모양도 나쁘지 않고 낮은 등급인 것 같다고 했으니깐 자꾸 그런 생각하지 마"라며 다독였다. 2분 컷으로 외래진료를 보기는 했지만 남편은 그래도 큰 병원에서 '괜찮다' 말을 들은 게 큰 위안이 됐는지 그날부터 밥을 먹기 시작했다.


6월 14일 MRI 검사를 하러 가서 슬라이드로 챙겨간 조직검사 결과가 오후 늦게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조직검사 결과 양성으로 바뀌면 PET-CT는 찍지 않아도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양성이면 취소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육종 관련 글을 수백 건 읽었는데 조직검사 결과가 악성에서 양성으로 바뀐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기에 기대도 되지 않았다.


6월 15일 서울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병원이다. 가져다준 조직슬라이드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와 PET-CT는 취소했으니 목요일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어안이 벙벙하다. 수술은 어떻게 하는지 물으니 1차 2차 검사 결과가 다르니 종양 제거 후 다시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수술은 그대로 진행한다고 한다. 남편은 전화 한 통으로 암 환자였다가 암 환자일지도 모르게 됐다.

나는 "큰 병원에서 조직 검사한 게 결과가 더 정확할 거야."라며 거의 확신에 찬 듯 말했다. 남편 마음이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6월 20일 입원을 했다. 4일 정도 입원할 걸로 예상하고 작은 캐리어 하나만 챙겼는데 4일 전에 AZ(아스 트라제) 백신을 맞고 갑자기 생리를 시작하는 바람에 생리대라는 큰 짐이 늘었다. 결국 기내 캐리어 하나에 보조가방까지 챙겨 병원으로 향한다. 남편은 7층 외과병동에 입원하는데 중증환자가 많은 병동이라 입원 수속 후 코로나19 검사와는 별개로 엑스레이 촬영까지 해야 했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한다. 일요일인데도 입원 수속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나라에 아픈 사람이 생각보다 많구나.'

7층 2인실 병동에 들어갔다. 옆 환자도 육종 환자다. 아직 젊은데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했다고 한다.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들 틈에 있으니 남편이 가엾게 느껴졌다.


6월 21일 수술실로 들어가는 남편을 배웅하고 보호자 대기실로 향한다. 작은 종양을 떼어내는 거라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고 하는데 마음이 불편하다. '괜찮다. 괜찮다.'괜히 가슴을 쓸어내린다. 1시간 30분 뒤에 마취가 덜 풀린 상태로 남편이 나왔다. 자면 안 된다고 해서 몇 번이고 흔들어 깨운다. 남편은 무통주사가 마약이라 그런지 정신이 계속 몽롱하다고 눈을 감는다.


6월 22일 오전 회진을 하면서 의사 선생님이 "악성 아니야, 내일 퇴원. 끝."이라는 말을 남기고 멀어진다. 외래진료는 2분 컷 회진은 한 병실당 3분 컷이다. 그래도 환자에 대해선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게 보인다.

조직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오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딱 보면 아나 보다."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남편은 그래도 "조직검사 결과까지 나와야 완전히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쉽게 웃질 않는다.


6월 23일 남편 왼쪽 팔에 달려있던 링거를 떼고 퇴원수속 후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시원하고 포근하다. 이래서 집이 최고라고 하나?


6월 25일 남편 왼쪽 팔에 주삿바늘 자국 위로 피멍이 올라왔다. 오른쪽 팔도 어깨 수술 후 제대로 못쓰고 있는데 외쪽 팔까지 팔꿈치 아래로 검게 변하니 괜히 맘이 쓰인다.


6월 30일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 퇴원할 때 진료비 결제를 하고 전화로 결과를 들었는데 통화시간이 2분을 넘지 않았다. "암 아니래."남편은 실로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맥주라도 마셔야 하는데 아직 수술부위 실밥 제거를 하지 않아 아쉽다면서. 잠깐의 전화 한 통으로 일상을 찾았다. 남편 옆에서 눈치 보며 맘 졸이던 나도 암이라고 생각했던 남편도. 남편에게 "평생 놀림 걸이 생겼다."며 웃었더니 "평생 놀려도 되니깐 암이 아니라 다행"이라며 웃는다. 서로 마주 보고 웃은 게 며칠 만인지...


'암'이라는 병명을 듣고 남편의 정신이 무너지는걸 가까이서 보면서 몸과 마음의 아픔을, 희망과 절망의 순간을 단 한 번도 부인과 자식 앞에서 티 내지 않았던 나의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는 아빠라서 더 강했던 걸까. 문득, 물어보고 싶은데 이젠 내 곁에 없어 마음이 시리도록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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