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밀린 일기콘을 몰아서 쓰고 그동안 참석하지 못했던 디카시 쓰기 모임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집과 병원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사람을 만나니 '이게 사는 맛이지.'싶다. 4주 차를 빠졌더니 진도가 생각보다 많이 나가 있었다. 디카시 10편을 써오라고 했는데 난 부랴부랴 쓰느라 겨우 6편을 써갔다. 써간 디카시를 퇴고한다. 퇴고하는 중간, 중간 강사님 두 분이 시를 보고 수정했으면 하는 부분을 알려주는데 내가 쓴 시를 보곤 지금은 수정할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혹시 글 쓰기를 배운 적이 있냐.'라고 묻는다.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고 했더니 가까운 곳에서 시 창작 모임이 있는데 관심이 있으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개인 전화로 연락이 왔다. '시 창작 모임이 있는데 거의 절반가량 진행된 상태다. 그래도 괜찮다면 연락을 달라.' 왠지 내부인을 통해 수강신청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홈페이지를 통해 수강신청을 하겠다고 했다. 중간에 접수가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수강신청이 안된다고 하면 글쓰기 교육프로그램이 집 근처에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내년에 신청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홈페이지를 통해 수강신청서를 써서 기관에 메일을 보낸다.
남편이 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거의 3주간 시간이 멈춘 채로 지내다 일상으로 돌아오니 생각보다 백수로 지내는 삶이 무료하진 않았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쉬는 사람들이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우스게스러운 말을 하나보다.
화분과 흙이 도착했고 남편은 이제 베란다에서 분갈이 중이다. 큰 화분에 한데 심겨있던 황금죽을 화분 3개에 나눠 심는다. 4년 전 퇴근길에 내가 사 온 식물인데 남편은 내 양손 가득 들린 화분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 내가 키우게 될 텐데... 왜 사 왔어...."라면서 말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죽이지 않고 무럭무럭 키우는 걸 보면 내가 따듯한 사람이랑 결혼을 했구나. 싶다. 내게 세상에서 태어나서 잘한 일 3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중 하나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영원의 동반자로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암이라고 했다 아닌 게 됐고 학교 성적도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나왔고 시 쓰기를 잘한다는 칭찬도 듣고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건가. 전화위복의 완벽한 뜻에 딱 들어맞진 않지만 그래도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됐으니 좋은 일인 건 맞다. 이번 마음고생을 계기로 매사 좋은 일만 있을 순 없겠지만 좋지 않은 일도 좋은 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불행도 행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정말 전화위복의 본래 뜻처럼 말이다. 이렇게 삶에서 하나씩 배워가며 인간으로 성숙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