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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Jun 14. 2024

원가 8만 원짜리 명품을 380만 원에 사는 이유

380만원에 파는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 핸드백 원가는 8만원이 채 안 된다.

https://fortune.com/europe/2024/06/11/lvmh-italian-dior-maker-investigation-luxury-goods-labor-exploitation-workers/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명품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30세대는 우리나라 명품시장의 주 소비자이다. 2020년 3대 주요 백화점 전체 명품 매출의 절반가량이 2030세대가 차지했다. 2021년 1분기 온라인 명품 플랫폼에서 MZ세대가 결제한 비중이 73%에 달했다. MZ세대로 통하는 2030 소비자들은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가격에 상관없이 아낌없이 투자한다. 이를 ‘플렉스 문화’(flex culture)라고 부르는데 사치와는 약간 다르다. 플렉스(flex)라는 단어는 준비 운동으로 몸을 푼다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과시하다’(flex your muscles)라는 숙어로도 쓰인다. 젊은 세대는 집을 사는 대신 그 돈을 명품 같은 것에 사용한다. 다른 모든 소비를 악착같이 줄여서라도 명품 제품을 단 하나라도 소지하려는 성향을 탓하기만 할 수가 없다. 기회가 적고 미래가 불투명하고 자신의 집을 살 가능성이 없고 불평등이 확대되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택한 삶이다.


인간 사회는 빈부격차와 힘에 의한 계급과 서열이 선언적으로는 없지만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권력과 폭력은 함께 따라다닌다. ‘미성숙한’ 사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2014~2015년 우리 사회는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같은 각종 ‘갑’의 횡포로 시끄러웠었다. 갑의 횡포뿐만 아니라 을에 의한 을의 ‘화풀이’ 성격의 횡포도 자주 목격된다. 우리 인간은 어떤 면에서 생각해보면 생존투쟁, 권력투쟁과 서열경쟁의 동물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투쟁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과 더불어 조직에서의 승진욕구, 정치에서의 권력욕구 등은 우리 인간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사실 계급의 단초는 농업이 아닌 유전자에서 비롯되었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모든 영장류 사이에 음식과 성이라는 두 가지 가장 기본적인 욕망에서 평등이란 찾아볼 수 없다. 지구상의 유인원인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세계에서 성적(性的) 자원은 불균등하게 분배되었다. 이런 유전자가 초래한 평등에 대한 경시와 탐욕추구는 계급발생의 생물학적 근거이다. ‘서열’ 경쟁은 인간만의 고유한 현상은 아니다. 침팬지 같은 유인원의 세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횡포는 진화를 거쳐 탄생한 동물의 세계에서도 같은 양상이다. 데이비드 바래시(David P. Barash)와 주디스 립턴(Judith E. Lipton) 부부가 함께 쓴『화풀이 본능』(2012년 번역출간)은 동물이 위계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하는 ‘화풀이’ 행동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공동체 내의 다툼에서 패배한 동물(‘을’)은 자신의 서열이 더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자신보다 약한 개체(‘병’)에게 ‘화풀이’ 폭력을 휘둘러서 위계질서를 유지한다. 화풀이는 진화과정에서 유전자로 각인된 본능으로 인간뿐만 아니라 유인원과 조류, 어류, 곤충에서도 발견된다.


피터 싱어(Peter Albert David Singer)의『다윈의 대답 I』(2007년 번역출간)은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사회현상을 분석한 책이다. 피터 싱어는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이 있으며 우리 육체와 유전자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동도 유전적인 기초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계급제도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위계를 형성하려는 경향을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사회적 지위는 배우자, 자원 등을 얻게 해주었기 때문에 인간은 사회적 지위를 중시하게끔 진화했다. 인간의 생존욕구는 지능의 발달과 함께 신분제도로 나타났다고나 할까. 이 같은 본성을 간과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몰락한 것이다. 한편 사람들은 진화 심리학을 유전자 결정론으로 보고 생존경쟁, 적자생존 등이 자연의 법칙이므로 인간이 겪고 있는 불평등이 유전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화 심리학은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의 진화를 연구하고 활용해 인간이 처한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학문이다.


프란스 드 발(Frans DeE Waal)이 쓴『침팬지 폴리틱스』(2004년 번역출간)도 침팬지 세계의 ‘정치’를 말하고 있다. 인간 세계와 거의 똑같이 펼쳐지는 분쟁과 화해, 경쟁과 협력, 음모, 합종연횡, 파벌 및 권력 교체 현상이 침팬지 사이에도 있다. 침팬지도 권력을 차지하려면 음모를 꾸미고, 합종연횡하고 격렬한 투쟁을 한다. 무리를 장악한 우두머리 수컷은 먹잇감에서부터 짝짓기까지 독점한다. 물론 우리 인간사회는 침팬지와는 다르게 신석기혁명 이후 국가가 등장하고 법률시스템의 도입으로 권력행사에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는 있다. 그럼에도 인간사회에서 ‘서열’이 높은 남자가 ‘좋은’ 여자를 더 잘 차지하고 더 많은 소득과 부를 점유하는 것은 침팬지 세계와 큰 차이가 없다. 생물학적 그리고 문화적 진화의 과정에서 나온 인간사회의 권력시스템은 유인원과 공유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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