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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음 May 01. 2021

가고 오는 것들

불두화가 바톤을 이어받다

 2020. 04. 06 월


 작년부터 기다리고 있는 꽃이 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연노랑 꽃. 불현듯 초등학교 때 미술시간, 하얀 팔레트와 ‘레몬옐로’ 수채물감을 떠올려준 ‘달맞이꽃’이다. 한 번 눈에 띄기 시작하니 더 자주 보여 반가웠는데 우리 동네에만 없어서 조금 아쉬웠었다. 빽빽한 도심 속 반딧불이처럼 작지만 멀리서도 반짝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아했었는데.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지난겨울 24동 현관 화단에 자색 이파리들이 꽃 모양으로 납작납작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 저게 뭔가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황금낮달맞이’가 겨울을 나는 모양이라고 해서 ‘내가 몰라서 그렇지.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깜짝 놀랐다. 봄에 꽃이 피면 만날 수 있겠지?! 생각에 자주 들여다보고 있는데 점점 풀이 무성해지더니 휑해 보이던 화단이 초록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오늘 가보니 안보이던 보라색, 흰색 꽃이 피어있었다.

무스카리와 산자고 1

 처음 보고 이름도 처음인  식물. ‘무스카리 ‘산자고일단 이름에서부터 왠지 모르게 둘의 결이  다른 느낌인데 둘은 모두 백합과의 식물이라고 한다. 오로지 황금낮달맞이만 생각하느라 분명히   친구도 함께 겨울을 나고 있었을 텐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얼핏 보면 포도송이가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같은 무스카리. 지중해 연안이 고향이라고 한다. 꽃향기가 진해 벌과 나비들이 가장 먼저 찾아온다고 하니 꽃이 피고 나면  향기를 맡아보아야지. 산자고는 보면 볼수록 묘하게 마음이 고요해지는 듯했다. 그윽한 느낌도 들고. 그러고 보니 이런저런 생각 없이 그저 가만히 한참을 바라보다가 차분해진 마음으로 출근했네. ( 꽃이니까 막연하게 봄이면 피겠지 생각한 황금낮달맞이는 6월에 핀다고^-^;;;;; 작년 여름에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이다. 지금은 무스카리와 산자고의 )


 2020. 04. 18 토


 무스카리와 산자고의 안부. 입을 앙 다문 솔방울 같았던 작은 무스카리가 어느새 자라 보라색 레게머리를 한 아이들처럼 명랑하게 화단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화단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봄의 시작을 알려주었던 산자고는 시들어 지는 모양으로 여름을 향해 건너가고 있음을 또 한 번 조용히 귀띔해주고 있다.

무스카리와 산자고 2


 2020. 4. 30  목 석가탄신일, 부처님 오신 날


 무스카리와 산자고가 있는 24동 화단 오른편으로 희끄무레 보이던 꽃. 모야모 앱을 통해 '불두화'라는 이름만 알아두고 있다가 며칠 전 15동 화단에서 같은 꽃을 발견했다. 그렇게 몇 번 마주치고 오늘! 버스를 타러 지나가는 길에 보았는데 몽실몽실 제법 탐스럽게 꽃을 피운 불두화. 어떻게 보면 수국 느낌이 나는 것도 같고.. 하지만 불두화 잎은 세 갈래로 갈라져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꽃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초파일을 전후로 꽃이 만발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오늘 운명처럼 보았네. 처음 필 때는 연녹색이지만 활짝 피면 흰색으로 변한다고 하니 자주 챙겨보아야겠다.

 법정스님이 동생에게 쓴 편지를 묶은 책 <마음하는 아우야!>를 참 좋아하는데 '모든 고난을 박차고 싱싱하게 즐겁게 살아가자.' 글귀를 불두화와 함께 마음에 새겨보는 밤.

며칠새 제법 탐스러워진 불두화


 2021. 04. 29 목


 쉬어가는 목요일. 오전에 백신 접종 예약이 되어 있어 병원에 들렀다가 내일은 외출을 못할 테니까 이따 잠깐 수업하러 나가는 길에 한 바퀴 돌아야겠다 싶어 30분 일찍 집을 나섰다. 지난 주말, 슬렁슬렁 산책하는 길에 자주 꽃봉오리가 보여 병꽃나무도 볼 겸 버스정류장이랑 가까운 오른쪽으로 걷기로 했는데 저기 멀리서 몽실몽실 동그라미들이 여기 나부터 보고 가라며 이리 오라고 손짓을. 불두화였다.

2021년 불두화

 천주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법정스님의 글을 참 좋아했다. 작년에는 석가탄신일에 운명처럼 만났는데 올해에는 축일날 또 운명처럼 만나게 되다니! 좋아했던 하루. 다가올 석가탄신일에 나는 어떤 식물을 눈에 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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