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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Mar 11. 2024

무쏘와 카니발

남자에게 자동차의 의미 

  제주도로 이주하기 전 내가 타고 다녔던 자동차는 기아자동차의 k7이라는 세단이었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는 조금 무리해서라도 한 등급 위를 사야 후회가 없다.'는 말을 믿고 30대 중반의 나이에 겁없이 지른 자동차였다. 그 자동차는 넓은 실내 공간과 안락함, 편안한 승차감까지 제공해 주어 나보다 아내가 더 좋아했다. 30대에 k7보다 더 좋은 자동차를 타는 능력있는 사람도 많지만 어찌 되었든 당시의 나에게는 분에 넘치는 자동차였다. 서울에 살 때는 운전을 할 일이 많지 않아 대부분 주차장에 세워 두었지만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뿌듯했다. 주말에 가끔 k7을 타고 나가면 괜히 가슴이 넓게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제주도로 내려오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구한 첫집은 농기계만 다닐 수 있는 거친 콘크리트길 옆에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맨땅에 대충 콘크리트를 뿌려 농기계가 다닐 수 있는 길, 메마른 날에 자동차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진하게 일어나는 시골길이었다. 집을 구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k7은 절대로 이곳에 데리고 올 수 없다는 것을, 이곳에 데리고 왔다가는 제주도의 험한 날씨와 지형에 몇 달도 버티지 못하고 찌그러지고 녹이 슬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았다. 눈물을 머금고 20,000km도 타지 않은 k7을 반값에 보내주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시골에서 쓰시려고 사셨지만 세워두기만 했던 무쏘 스포츠를 몰고 제주도로 내려왔다. 

  내가 무쏘를 제주도에 데리고 온 것은 제주도와 잘 어울린다는 실용성 하나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나뭇가지와 잡초가 뻗어 있는 거칠고 좁은 길을 아무렇지 않게 치고 다니기에 좋은 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래서 제주도의 돌담을 스쳐도, 나뭇가지를 백미러로 치고 가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픽업트럭이었기에 짐도 많이 실을 수 있고 힘도 넘쳐 실용적이기까지 했다. 사방이 온통 무밭인 제주도 시골에 어울리는 차였다. 그렇다고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료통에 구멍이 뚫렸는지 의심하게 되는 최악의 연비, 안락함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승차감은 한숨이 나오게 했다. 자동차에서 내릴 때는 괜히 가슴이 움츠려 드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무쏘를 몰기 전까지 자동차가 사람의 격을 나타낸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k7을 팔고 무쏘를 몰기로 결정한 것도 자동차에 대한 환상이나 허세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년이 넘은 무쏘를 끌고 제주시내에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시골 촌놈 취급을 했다. 거기에 잦은 고장으로 스트레스와 함께 수리비와 유지비가 많이 들었다. 무쏘는 그렇게 나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마음이 떠나서였을까? 결국 이 차와의 인연은 급정거한 앞차를 시원하게 들이받고 수리비와 병원비를 모두 물어주고 나서야 끝이 났다. 그리고 차에 정이 떨어진 나는 이 차를 단돈 70만원에 중고차 거래상에게 넘겨 버렸다. 자동차 사고가 난 것은 불운한 일이지만, 내가 들이받은 스파크 경차의 트렁크가 아작이 났는데도 무쏘는 범퍼만 살짝 깨진 것으로 끝이나 무쏘의 위력을 실감했다. 무쏘는 그야말로 막강한 무쇠 덩어리였다.


  함께 한 시간은 2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무쏘 스포츠는 자동차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는 역할을 해주었다. 자동차는 사람을 태우고 짐을 싣는 역할을 하는 것 외에도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왜 저마다 자신만의 드림카를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지, 승차감 뿐 아니라 하차감도 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자동차로 사람을 평가하고 등급을 메기는 것은 잘못되었지만 어느 정도의 자기만족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꼭 비싼 외제차가 아니어도 원하고 어울리는 자동차를 타는 것은 심적으로도 안정감과 만족감을 준다. 자신의 기호나 개성, 니즈와는 상관없이 경제성, 실용성만 따진다면 자동차는 아무런 애정 없이 쓰고 버리는 소모품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비록 보잘 것 없는 물건이어도 물건에 대한 애정을 가질 때 그 물건은 생명력을 얻고 특별해질 것이다. 무쏘에 이어 새로 7인승 카니발은 럭셔리 드림카와는 아주 거리가 먼 패밀리카이지만, 차와 함께 온가족이 제주도 이곳저곳을 누비며 차박을 하고 캠핑을 다녔다. 위에 루프탑텐트를 얹고 차안을 개조하여 여행을 하며 우리 가족은 큰 만족감을 느꼈다. 카니발은 우리 가족에게는 슈퍼카보다 더 멋진 드림카이다. 이처럼 자동차는 사람과 함께 하며 추억과 의미를 안겨주는 특별한 존재이다. 자신이 원하는 차를 선택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여보, 저거 우리 차 아니야?"

  2년 동안 무쏘와 함께 하며 오만정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얼마전 제주시내 도로에서 마주친 한때 내가 소유했던 무쏘를 보고 온 가족이 환호성을 질렀다. 신기하면서도 아무런 탈없이 잘 굴러가는 무쏘를 보니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좋은 주인을 만나 아직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래, 나보다 좋은 주인 만나 행복하렴.


  탱크같이 두꺼운 철판의 바디,

  제주도의 거친 시골길을 거칠게 치고 다니고

  비포장 도로의 먼지를 신나게 일으키던 무쏘!

  커다란 애정을 주지 못하고 떠나버린 자동차이지만  

  잠시나마 우리 가족과 함께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나와 인연을 맺는 모든 존재를 더욱 깊이 사랑하고 소중히 대할 것이라는 다짐을 해본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아내가 급하게 찍은 한때 나의 무쏘, 번호도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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