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김성남은 대마초를 피우다 걸려 파리로 도망을 간다. 화가의 순례지로 그렇게 가보고 싶던 파리(하지만 유학생에게도 보조금을 지원하는 토종 한국인으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파리)에서 이방인이 된 것이다. 그는 모든 이방인과 방문객들이 모이는 파리의 한인 민박집에 임시 둥지를 튼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물과 시간, 공간이 혼돈에 빠진 도시에서 방황, 혹은 산책을 한다.
영화는 스타카토로 끊긴다. 등장인물들은 불쑥 나타났다가 곧 사라진다.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잡다한 재료를 오려 붙인 콜라주이다.
혼돈! 사상누각!
등장인물 1, 10년 전 여자 (유부녀)
자신을 통해 6번 중절 수술을 한, 지금 브라질 남자(형식적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와 파리에서 살고 있는 한국 여자는 왜 등장했는가? 그녀는 성남에게 사랑을 요구한다. 육체적 사랑을 요구한다고? 아니, 그냥 사랑을 요구한다.(여기서 육체와 정신이 어쨌다는 둥의 이야기는 하지 말자)
왜? 너무 목이 말라서.
그림 ‘세상의 기원’을 보면 예술이기 이전에 ‘그냥 그런 마음’이 드는 것처럼. 사람에 목마른 자가 사랑에 목마른 것은 살기 위한 본능이기에.
거부당하고는? 죽는(자살) 다.
낭만적인 혼돈의 끝은 어디인가?
등장인물 2, 유정
보자르 여대생은 만난다. 사랑에 빠진다. 그냥 그렇게 마음에 끌린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복제해서 자기의 것인 양 들고 다닌다. 그리고 성진에게 복제된 그림을 보여줄 때 몇 번을 당부한다.
“근데 이거 어디다 갖다 쓰시면 안돼요. 이거 하나밖에 없는 거라”
네이버 블로그 글, 그림을 퍼가려 한다. 마우스 오른쪽 버튼 금지. 복제는 안된다고 한다. 자기 꺼도 아니면서, 자기도 어디서 복제한 것이면서.
그녀는 모든 것이 ‘척’이다.
자기 것인 척! 자는 척! 모르는 척!
유부남은 절대 싫다던 그녀가 성남과 사랑에 빠진다. 왜?
성남의 순수한(그렇게 믿고 싶던) 사랑에, 자신은 가지지 못한 그 순수함에.
그녀는 말한다.
“자기 맘껏 사랑하기로 했어. 어차피 유한한 시간인데 그때까지 사랑할 거야. 난 내가 누군지 모르겠거든요. 근데 지금 감정이 명료해졌어요. 그것만으로도 힘이 돼요.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임신을 하고, 버림받는다. 그리고 그 배신, 순수함의 상실을 그냥 받아들인다. 그녀는 알고 있었기에. 어차피 유한한 시간이니까.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등장인물 3, 꿈속의 여인
‘사상누각’ 그림 원본을 가지고 있던 보자르 여학생이 갑자기 꿈에 나타난다. 그녀는 성남에게 무수히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동일한 중절의 상처를 남기며) 거쳐갔던 여인들처럼 등장한다. 유일한 원본을 가지고 있던 그녀가! 그것도 의식을 모두 무너뜨리는 ‘꿈’ 속에서.
등장인물 4 성진 (그리고 그 부인과 여자들)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는 성진(그리고 그 부인)은 사실 혼돈과 거짓 가운데 있다. 성진은 이 여자 저 여자에게 말한다.
“넌 너무너무 예뻐. 미안해. 사랑해.”
모든 여자는 이 단순한 말에 빠진다. 아니, 단순한 말이기에 빠진다. 하지만 이 말은 영원하지도, 진정 사랑을 주지도 못한다.(바라지도 않는, 아니 못한다) 뿌리가 잘려나간 꽃병의 꽃처럼 예쁘다. 여자들도 안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우리의 유한한 시간에.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꼴라쥬 의한 조각을 잘 집어 들어야 한다.
곧 혼돈! 사상누각!
‘얇은 일회용 비닐 봉다리’
‘버려진 당배 꽁초와 물에 씻겨 내려가는 똥 덩어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공항 안의 길 잃은 새’
그리고 이 혼돈 가운데 그가 잡고 있는 것(질문)을 보아야 한다.
그는 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하늘 그림을 그리는가?
그는 왜 믿지도 않으면서 성경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는가?
그는 왜 파리를 ‘돌로 쌓은’ 도시라 말하는가?
그는 왜 식당에 자신의 ‘이력서’를 두고 올 수 없었는가?
홍상수는 질문한다.
지금 시대에 영원한 것은 존재하는가?
혼돈을 벗어날 수 있는 출구는 존재하는가?
그 답은 ‘세상의 기원’에 있는가, ‘돌 깨는 사람들’에 있는가?
그는 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도 혼란 가운데 있다. 그는 파리의 유학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곧 혼돈에 빠진 현대인(나)이다.
“여기 애들은 자기 주제를 너무 모르고 살아. 여기서 배운 제스처만 잔뜩 끼워 가지고 말이야. 한국하고 여기 잣대를 편의대로 사용하면서 말이야. 항상 지는 잘났다는 식이야. 정말 헛소리 같은 소리를 창피한지도 모르고 한다니까. 그러면서 점점 쓸모없는 인간으로 퇴화하는 거야. 지들도 그래도 불안하겠지.
‘한국에는 정말 편견이 많아요’ 이렇게 소리를 지르거든. 근데 그 자신은 정말 논리도 없고 뭐가 진짜 좋은 것인 줄도 모르거든. 하는 말마다 다 알겠거든. 뭘 흉내 내고 있는지. 하여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는 거야. 옆에 가까이 갔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몰라. 여기 파리엔 그런 애들이 아주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