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아직 살아있다_<프로메제>

by 정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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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덴 형제, 프로메제(La Promesse, 1996)


다르덴 형제의 초기작.

약속.

사랑.


이렇게 진부한 제목의 영화는 왜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

'진부함'


이 다 익다 못해 썩어가는 열매의 이 쾌쾌한 냄새. 하지만 기억하라. 이 쾌쾌한 냄새는 날파리를 먹이고 푸른 사슴이 씹어댈 잡초를 먹인다.


그 순수함이 가진 힘이여!

죽어가는 흑인 불법체류자에게 아내를 부탁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가 약속한 것은 아이와 여인의 생명, 곧 영혼을 지키는 것이다. 흑인들의 주술처럼 모든 상황이 혼란스럽다. 명쾌해지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해결하려는 모든 노력은 악을 불러올 뿐이다. 문제의 여인은 이제 이태리로 떠난다. 이르고(주인공 소년)는 약속을 지켰다. 흑인의 주술이 그녀에게 과거를 잊고 미래의 희망을 준 것처럼, 이르고도 그녀에게 미래의 희망을 안겨줄 준비를 다 마친 것이다. 하지만 이르고는 약속에 만족할 수가 없다. 그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진실, '당신의 남편은 나와 내 아버지가 방치해 죽게 했고, 시체는 유기했습니다'. (아르고는 여기서 아버지의 악에 '복종'했다는 표현을 쓴다) 모든 것이 없었던 일처럼 다 잘되어가고 있는데, 왜 진실을 말해 모든 것을 되돌리려 하는가? 아!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우리는 진실을 말해야 하므로'라고 순진하게 말할 수 있는 이에게 나의 질투 어린 존경심과 축복을!


해결의 문턱, 아니 모든 문제를 무마시키는 문턱에서 이르고는 돌아선다. 그리고 그는 여인과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더 깊은 나락으로. 하지만 모든 것이 진정 분명 해지는 곳으로. 이 영화는 우리는 무엇을 보게 하는가? 좌절? 비참한 현실?


인간이 진리와 진리의 탐구를 너무 인간적으로 이끌고 간다면

-그는 오직 선을 행하기 위해서만 진리를 추구한다-

단연코 그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니체, 선과 악의 저편 35'


머리 아픈,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는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면 우리는 이렇게 외쳐댄다.


'나도 알아! 아니,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이 비참한 현실을 내 휴식시간에도 확인해야 하겠니!'


그들은 채널을 돌리고, 쉼 없어 터뜨려대는 영화를 보러 간다.


그럼 왜 우리는 비참한 영화를 보아야 하는가? '희망'을 갖기 위해서! 비참함 과거와 '결별'하기 위해서!

이르고는 왜 진실을 말하는가? 그는 도대체 무엇을 약속한 것인가? 무엇을 증명하고 싶은 것인가?


이것,

인간은 아직 살아있다.

그것도, 모든 것을 감당할 만큼 강하게.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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