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체험학습은 싫어요, 학교가 좋아요.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학교
남편도 나도 일에 치여 허덕이다, 산이나 바다로 하루쯤 파묻히고 싶은 작년 가을,
“체험학습 쓰고 하루 놀러갈까?” 했더니, 큰 아이가
“그럼 학교를 못가잖아요. 체험학습은 싫어요.”
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리는 무엇인가? 학교에 가고 싶다니, 그래서 체험학습을 쓰고 싶지 않다니.
대안학교에 간 첫 날부터 아이는 학교와 선생님과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반했다.
"엄마, 왜 1학기부터 대안학교에 안보냈어요?"
"고3 형들이 너무 좋아요. 졸업하지 말고 학교에 계속 다니면 좋겠어요.ㅜㅜ"
"K 선생님이 6년 내내 담임 하면 안되요?"
나는 예상치 못한 아이의 질문이 기쁘면서도 이 일이 뭔일인가 싶었다.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착하고 순수한 선생님들과 친구들, 선배들 사이에서 아이는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 얼굴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사라졌다. 그동안 억눌렸던 죄없는 포로의 귀환이랄까.
다음으로는 일반학교와 다른 수업 방식이었다. 매 시간 함께 토론하며 수업 내용을 나누고, 또 주어진 과제나 맡은 발표가 있다면 마무리지어야 집에 갈 수 있어서 책임감이 절로 생겼다.
아이에게는 ‘자신감’이, 우리집에는 ‘화목’이 찾아왔다. 벽이 사라지자 서로가 보였다. 대화는 이어지고 나는 문득, 아이가 자라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난데없이 귀여워져 나보다 더 큰 아이를 자주 안아주고 쓰담게 됐다.
예전에 독일 한인교회 사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유치원에 다녀 온 아이가 엄마 없이 하루종일 그곳에서 눈치보며 살아내느라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고, 다녀오면 한 시간 이상은 안아주어야 ‘회복’이 된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면 청소년기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떨까? 공부에 대한 끝없는 스트레스(그런다고 결코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닌데),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들(피곤할 정도의 감정소모), 쓸데없이 서로 비교하며 낮아지는 자존감, 작은 차이들이 차별을 만드는 사각지대에서 치열하게 버티며 사는 건 아닐까.
더 큰 문제는 어디에도 마음을 털어놓지 못해 자기 안에 꽁꽁 숨다 모든 것과 단절되고, 아이는 그만 혼자가 되고 만다는 것.
나는 핸드폰을 붙들고 있는 아이를 야단치기만 했다. ‘학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보다 다음날 보는 단어시험 준비는 했냐며, 닥달했다. 팔짱을 끼고 싸한 분위기를 만들고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다그치기 일쑤였다. 대화가 안되면 혼자 신세한탄을 하다 ‘넌 대체 왜 그러냐?‘며 일방적으로 말을 끝냈다. 그런 아이는 집도 학교도 기댈 곳이 없었다. 손에 쥔 핸드폰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러나 학교가 행복한 곳, 가고 싶은 곳이 되면 아이는 집으로 돌아올 힘이 생긴다. 엄마 아빠와 눈을 마주치고, 자신의 이야기를 비로소 꺼낸다. 아이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핸드폰만 보던 얼굴을 서서히 든다. 기댈 수 있는 곳이 생긴 아이는 안정을 찾고 쉰다.
학교라는 곳이 행복한 곳이라면, 매일 만나고 싶은 이들이 있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면, 그곳이 학교라면!
아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런 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