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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름 Feb 23. 2024

평생 한 번은_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파멸의 길로, 절망의 길로 날 빠뜨린 너

서울의 저녁, 노을도 예쁘구나.

아이의 방학숙제 중에 ‘공연이나 전시 관람‘이 있어 저렴하고 저렴한 공연으로 알아보고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가족 넷이서 보려면 10만 원은 훌쩍 넘었다. 그렇다고 찾아 본 것들은 딱히 보고 싶은 공연도 아니었고,(저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보고 너무 실망한터라 대학로 발걸음을 뚝 끊을 정도) 이럴봐엔 사진전이나 미술관을 갈까, 하는데 해결사 남편이 역시나 혜안을 내놨다.


이왕이면 명작을 보자.
노트르담 드 파리.


빅토르 위고의 1831년 작품, '노트르담의 곱추'

15세기 파리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소설.


조기예매로 1인당 5만원 정도. 3층 2번째 줄이었는데 망원경을 가져가면 되지 않을까, 하면서. 그래도 20만 원에 육박하는 공연비에 우리는 1월 한 달동안 외식금지에 택배도 완전히 줄였다. 8년만에 하는 노트르담 드 파리였으니까. 평생에 한 번 봐야 하는 좋은 공연이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아이들은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으로 예습까지 했으니 어느 정도 준비는 됐다.


라면을 먹다가, 차가 밀려서 겨우 공연장에 들어갔다. 중간에 기침이 나서 적은 물로 목을 적시느라 또 얼마나 숨막혔는지. 3층이라 배우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서 소리에 더 집중했는지 모른다. 뮤지컬의 특성상 내용보다는 중심이 되는 사건 몇 개에 노래들로 전개되는데, 줄거리를 모르면 내용 파악은 쉽지 않았다. 스토리 중심의 연극과 달리 뮤지컬은 ’쇼‘의 성격이 강했고, 노래와 춤의 연기가 내용전달보다는 볼거리의 만족에 더 취중할 수밖에 없었다. 서커스 같은 장면들에 초등아이도 중학생 아이도 정신없이 2시간 반을 집중해서 볼 수 있어 좋았는데, 아이들은 초대형 뮤지컬의 문화충격이 컸는지 끝나고도 좀 어리벙벙했다. 그리고 고전은 고전이라 역시 내용도 노래가사도 순간 전율.


좀 의외의 감동은 에스메렐다를 향한 콰지모도의 사랑이 아니었다. 프롤로 신부였다. 신부로 일평생 신을 사랑하다 집시 여자를 사랑하게 된 그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그 여자를 죽일수밖에 없다는 노래. 그는 나마저 파멸의 길로 빠뜨렸다. 신부로서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공연이 끝나고, 한달째 아이들은 노트르담 드 파리의 ost를 듣는다. 이제 모두가 가사를 다 외울지경.

대성당의 시대, 우리는 이방인, 피렌체, 미치광이들의 축제, 파멸의 길로.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뮤지컬 속에 머무른다. 일상과 극 속을 오가며 누구보다 그 감정을 궁금해하고 그러다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문학은 이렇게 애타고 처절하며 황홀하게 만든다. 그것도 타의에 의하지 않은 충만한 스스로의 의지로.


아이들이 크면 유년을 회상하며 이 공연을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부모로서 평생 한 번은 경험하게 해 줄 귀한 숙제를 패스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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