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하면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그리고 굶는다. 한끼, 두끼 어떤 때는 세끼. 타이레놀을 먹고 잔다. 일어나면 두통은 온 몸을 갉아먹는다. 약을 또 한 알, 해외직구로 산 대용량 타이레놀. 다시 잔다. 늦은밤 거실로 기어나와 흰죽을 끓인다. 그래도 살겠다는 대견한 의지. 내일은 괜찮을까? 흰 죽을 저으며 낫고 나면 먹고 싶은 음식들을 헤아린다.
떡볶이
간짜장
삼겹살
울렁거리는 속을 안고 생각한다.
또, 뭐가 있더라...
나는 '하자있는 인간'이었다. '먹고 아프고'를 고등학교때부터 반복해왔으니 몸은 견뎌나질 못했다. 토하고 눕고 나으면 다시 먹었다. 남편은 이런 상태줄 모르고 속아서 결혼했다며 등을 두드린다. 한약과 양약를 교대로 먹고,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도 한다. 그래도 어김없이 또, 또.
그러나, 답은 심플했다!
건강에 좋은 음식 위주의 식단으로 적당히 먹기,
천천히 먹기.
그리고 운동하기.
그러나 내게 고난이도 코스. 무리한 요구.
적당히, 천천히, 운동이라는 슬픔의 삼각형.
'맨발걷기'의 시작은 잇몸 때문이었다. 잇몸치료를 5번이나 하고도 몇주째 피가 나고 너무 아팠는데, 급기야 이가 흔들렸다. 치과에서는 이 뿌리에 염증이 생긴 것 같다고, 뽑고 임플란트를 할 수 있으니 준비하라고.
아냐, 이건 아냐! 생니를 뽑을 수 없어ㅠ
열심히 양치, 치실, 가글까지. 나아지는 기미가 없을쯤 추천받은 운동. 이를 뽑기 전에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 잇몸이란 건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거예요.
'맨발걷기'를 해 보세요.
3일에 한 번, 일하느라 평일이 안되면 주말이라도 꼭 산에 가서 맨발로 걷고 있다. 왕복 한시간 정도인데 특히 아침 산행이 참 좋다. 촉촉한 흙길, 새 소리, 스며드는 상쾌한 바람, 고즈넉한 숲 속까지.
그래서 결론.
1. 맨발걷기 두 달째, 잇몸이 괜찮아졌다.
2. 체하지 않은지 두 달이 넘어간다.
3. 밤에 잠도 잘 오고, 낮에도 정신이 깨송깨송하다.
아침잠이 많아 '난 원래 이런 인간이다'라고 여기며 살아왔는데,아침 여섯시반에 일어나 아이들 아침으로 토스트를 굽는다. 이것은 변신이다.
몸도 몸이지만, 맨발로 산을 걷다보니 정신이 맑다. 어쩌면 피곤한 정신탓에 몸이 아팠을까. 온통 아스팔트 깔린 도시에서 흙길을 찾아 걸으며 자연으로 자연으로 들어간다. 초록을 몸과 마음에 채우니 '이제 괜찮아졌다'라는 안도감.
산 아래 흐르는 물에 발을 씻는데, 어느새 산의 일부가 되어버린 느낌. 나는 이 산의 무엇일까.
그러고보니 사람은 어쩌면 이 초록을 머금어야하는 식물같은 존재이려나, 싶었다. 너를 이기기 위해 부수고 찢고 할퀴며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물이 아니라, 햇빛과 물을 받아 자라 가고, 꿀벌과 나비와 공존하며 평화로운 숲을 이루어가는 초록의 너와 나.